‘잃어버린 바다’

‘네 개의 눈, 한 개의 몸’

강미미 작가는 농사를 지으며 작물을 대하는 삶 속에서 자연다움을 찾고, 그 자연다움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꺼내본다. 작가는 농사와 작물, 동·식물, 뿌리와 허물을 관찰하며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뿌리로 삼아왔다. 이번 전시에선 일상에서 쉽게 지나쳤던 생명과 존재의 무게, 그 주변의 작은 존재들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들여다본다.

‘파괴, 소멸, 사라짐, 지워짐’이라는 서사적 조형언어로 자연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오는 19일까지 주안미술관에서 열리는 강미미 개인전 ‘오늘, 기쁘게도 비가 내린다’이다.

이번 전시는 ‘자연다운 인간’과 ‘인간 닮은 자연’이라는 탐구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에게 ‘밭’은 단순한 생산의 공간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마주하며 생존과 판단이 교차하는 ‘실험실’이다. 잡초를 뽑고, 목화가 죽어버린 경험, 호미로 뿌리를 제거했던 순간이 작가에게는 죄책의 자국이었고 이 자국이 이번 작업의 출발점이 됐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소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 남긴 시간적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관람자의 기억·경험을 직접 불러일으키는 텍스트적 경험으로도 기능한다.

특히 전시 주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비가 내리는 순간이 남기는 감각과 잔여를 마주해본다. 비가 오기 전의 고요함, 도구의 흔적이 드러나는 중간 단계, 마지막으로 소리와 형상이 옅어지며 남는 침묵까지. ‘자연’을 떠올려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펼쳐진다.

잡초, 매미의 허물, 나무 아래 흩어진 꽃잎, 발밑에 놓인 거미줄 등 인간이 흔히 ‘쓸모없다’고 판단해온 존재도 등장한다. 작가의 작업은 이들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담담히 드러낸다. 그 존재들은 ‘없어졌다’고 여겨질지언정 그 자리에 있었던 ‘감각’과 ‘기억’은 사라지지도, 무가치해지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존재들이 가진 의미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얼마나 많은 생명의 층위를 놓쳤는지 묻는다.

전시장은 회화와 드로잉, 설치 작업 등으로 구성됐다. 빽빽하게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활용해 관람객이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있게 돌아보며, 공간 속 ‘사라진 흔적’과 ‘남아 있는 감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작가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나쳤으며, 무엇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번 전시가 많은 이들에게 자기 존재를 조용히 마주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