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시로 기록해 시대의 아픔을 세상에 전한 김준태 시인이 이번에는 이야기꾼으로 돌아왔다. 김준태 시인이 생애 첫 소설집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도서출판b)를 펴냈다. 이번 작품은 김 시인의 64번째 저서이자, 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책에는 90편의 액자소설과 중편소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 1편이 함께 실렸다.

김 시인은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구조의 액자소설들은 모두 내가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며 “그 삶의 편린에 시적 상상력을 덧붙여 완성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수록된 삽화 70점 모두를 김 시인의 아내 이명숙씨가 직접 그렸다는 것이다.

시인은 “누구보다 내 글의 결을 잘 아는 사람이 아내다. 글 속 장면들이 그림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보며, 이 책을 아내에게 바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한 뒤 그 참상을 시로 기록하며 광주의 아픔을 세상에 알렸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는 여전히 ‘광주정신’을 문학의 뿌리로 삼고 있다.

시인은 “광주정신은 바로 누가 죽으려 하면 ‘죽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살아야 한다.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결국 함께 살기 위한 것”이라며 “1980년 5월의 광주는 절대 공동체였다. 내가 45년간 광주에 살며 느낀 광주정신은 생명과 평화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시인의 오랜 문학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5년 ‘문예중앙’에 발표했던 중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비롯해 광주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확장된 작가의 시선이 펼쳐진다. 작가의 페르소나인 ‘허만중’이 화자로 등장해 광주와 서울, 베트남, 베를린 등지를 오가며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가 90편의 액자소설 속에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시와 소설은 결국 한 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라는 형식 안에서 시를 써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는 시적 감수성과 서사적 힘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종횡무진하며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엮어낸 한국 현대사의 ‘천일야화’로 불릴 만하다.

책의 제목처럼, 그는 여전히 ‘죽지 않은 오르페우스’로서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시인은 “광주를 노래한 내 시와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진다”며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으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포용과 희망의 노래를 계속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김준태(사진) 시인은 1948년 해남에서 태어나 조선대 사범대 독어과를 졸업했다. 13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한 뒤 전남일보와 광주매일신문에서 11년간 편집국 데스크로 일했다. 이후 5·18구속자회 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9년 월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는 시집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칼과 흙’,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등을 펴냈다. 현재 창작학교 ‘금남로리케이온’을 운영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조선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액자소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 속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그린 삽화.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