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이글거리고 사람들은 죄다 울상이다. 어떤 사람은 이마 위에 손바닥 가리개를 한 채 걷고 있지만 여전히 더위에 지친 얼굴이다. 간혹 선글라스를 끼거나 반바지 차림으로 도도히 걷는 사람도 폭염(暴炎) 속에서는 풀 죽은 고춧잎처럼 어깨가 축 처졌다.

며칠 전엔 낯선 이가 찾아와 아는 체를 하면서 악수를 청했는데, 그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말을 하길래 몹시 불쾌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때 도슨트로서 밥벌이도 조금 하였다는데, 그의 눈을 볼 수 없으니 허깨비와 말하는 것 같아서 조롱당한 느낌이 들고 또 그가 아무리 친근한 척 다가와도 마음이 열릴 리 없으니 마주하는 자리가 모기에 쏘인 엉덩이처럼 따갑기만 했다.

눈은 얼굴의 8할이다. 장애가 아닌 이상 상대 앞에서 눈을 감추는 것은 그가 숨기고자 하는 것이 많고, 또 정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사람은 결국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눈으로 말해요.’라고.

여름은 인내의 계절인 만큼, 자제력과 절제력을 시험받도록 만든다. 연일 지속되는 불볕더위에 불쾌 지수가 높지만, 어느 날 문득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사람들은 허겁지겁 비를 피해 몸을 숨기기 바쁘다.

필자의 서가에는 평소에 시적 영감을 얻을 만한 그림과 사진 등, 여러 개의 작은 액자가 놓여 있다. 시 한 편이 나오면 그 액자 안의 내용물은 꺼내어 뒷면에 날짜와 시의 제목을 쓰고 서랍 안에 쌓아 둔다.

한 달 전, 필자는 사진 한 장을 우연히 포털사이트에서 발견하고 가슴이 뭉클해 그 사진을 액자 안에 넣어뒀다. 출근 전에 꼭 들여다보고 시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중인데, 시보다 먼저 칼럼이 그 사진을 불러들여 이곳에 옮긴다.

2023년 8월29일, 경기지역 일간지 포토뉴스에 2명의 기자가 올린 사진과 기사 내용의 제목은 ‘내 어깨는 다 젖어도’이다. 제목도 시적이지만 그 광경을 촬영한 기자 역시 시인 같기만 하다. 노인이 손수레에 고물을 싣고 힘겹게 밀고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나 보다. 젊은 여성은 한쪽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 한쪽 손엔 분홍색 양산이 아닐까 싶은데 그 양산을 노인을 향해 기울게 한 채 본인은 정녕 비를 맞고 걷고 있다. 다음은 기사 내용이다.

“폐지 어르신에 우산 내어준 ‘천사’. 사랑은 비를 타고 … 아직 살만한 세상. 안산시 단원구의 한 거리에서 만난 분홍색 우산의 여성은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을 따라 1km 거리를 조용히 걸었습니다. … 우산을 한껏 기울여 자신의 몸은 몽땅 젖은 채 “특별한 일도, 별다른 일도 아니다”라며 한사코 신분을 밝히길 거부했습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인가.

신경림 시인(1935-2024)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불현듯 생각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새 정부는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하자. 저도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미래를 만들면 좋겠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청문회 기간에 발달장애인 일자리 현장을 찾아 애로·건의 사항을 청취하면서 했던 말이다.

힘겨워도 낮은 흰 구름으로 위안을 삼고 밤엔 별을 헤며 꿈을 놓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