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고 6·25 전쟁 중인 1952년 4월 시읍면의회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가 실시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지방자치는 한국사회의 격동 속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민선자치 부활 30년과 함께 이립(而立)의 단계에 들어섰다.

사람이 아동청소년기를 거쳐 당당히 서고 스스로 자립하는 성년이 되어가듯이,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도 부활·성장기를 거쳐 이제 성숙 단계에 접어든 것은 크게 기념하고 축하할 일이다. 이에 정부는 10월29일 지방자치날에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광주시와 전남도 등 각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그리고 관련 연구단체에서도 7월1일을 기해 이를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우리 지방자치는 해방 이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항상 중앙정치권력의 하위 단위로 치부돼 험난한 부침을 겪으면서도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이승만이 1952년 첫 지방선거부터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씨앗을 말려 군사독재를 이어가려고 했다. 윤석열정부까지도 주민자치를 억압하고 12·3 내란으로 지방의회를 해산하려고 한 것은 아직도 여전한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지방자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아픈 역사이다.

그래서 ‘스스로 서는 이립 단계의 성숙한 지방자치’는 그 한계와 취약성, 상처들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엄정하게 분석 평가해 혁신 대안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행정안전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방자치 30년 평가’를 추진하고, 지방자치 관련 학회에서도 학술적 차원에서 평가를 준비하고 있지만, 이러한 작업들이 자화자찬식 성과 위주 평가나 단편적 추진사업의 나열과 연혁 정리에 그쳐서는 안된다.

우선 평가의 대상도 광주시나 전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시군구 기초자치단체까지 확대해야 한다. 또 행정기관 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와 지방정치, 지역정책의 결정구조와 결과도 세세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특히 30년 동안 지역변화와 주민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 정책들의 공과를 사례별로 정리하고 탐색하는 것은 각각 지역에 맞는 주민자치 방식과 지역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이립 성숙단계의 지방자치는 선진외국의 제도와 정책들을 모방하고 도입하는 벤치마킹의 실험적 단계에서 국내 각 지역의 선도적 사례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한국형 지역선도정책들이 뿌리내리는 시대여야 한다.

꺾이지 않는 청년 유출로 139만대로 줄어든 광주시 인구는 공공서비스 수요나 수준에 감축관리의 결정적 변화를 몰고 오며, AI형 과학기술의 확산은 지역 고용시장과 직업군의 변화, 주민과의 소통과 서비스 제공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더 높아진 자치와 참여 욕구, 행정 수비범위의 무한 확대, 지방재정의 한계는 더욱 유능하고 대응적인 지방정부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요구들은 중앙의 경직된 지방자치제도와 획일적 지방정책들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방이 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 수준의 고도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행사하고, 주민과 함께 공공서비스 생산의 책임과 권한을 분담하는 공동생산 시스템으로 다원화, 유연화할 것이 필요하다. 이립의 지방자치 30년은 과거에 대한 축하와 기념을 넘어, 한국 지방자치제도를 재정비하고, 광주·전남의 미래와 비전을 설계하고 깊이 성찰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