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광천시민아파트 일원에서 스케치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도시화와 민주화의 기억이 동시에 흐르는 공간이지만 대규모 재개발을 앞두고 대부분이 철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붓과 펜으로 기록하기 위해 기획전을 마련했다.

광천시민아파트는 1970년 7월 광주 최초로 조성된 연립형 구조에 3층 짜리 3개 가·나·다동으로 구성됐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거주하며 들불야학의 거점으로 쓰였다. 지역 노동자를 위한 학교인 들불야학은 1978년 8월 인근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시작해 다음해 1월 아파트 다동 2층으로 옮겨왔다. 윤 열사는 5월 항쟁의 마지막 날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산화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이 남다르다. 시민아파트는 5천800여 세대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부지에 포함돼 전면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1개 동을 리모델링, 역사박물관 형태로 보존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이미 1-2년 전부터 이주 절차에 돌입했으며, 184세대의 거주민도 전부 떠난 상황이다. 스케치에 동행한 작가들은 골목 끝 그늘진 담장 아래, 낡은 철문 앞, 아파트가 보이는 작은 공터 등에 각자 자리를 잡고 각자의 시선으로 하얀 도화지에 담았다. 세월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스며들어 그 날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다. ‘들불7열사’를 포함해 많은 활동가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광주시민의 귀중한 자산이다. 일부라도 남아 미래세대가 방문하고 기억할 수 있게 돼 그나마 다행스럽다. 제대로 된 보전과 활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영상과 사진 작가들도 초청해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또한 모두 완료되면 전시회를 준비해 일반에 공개한다. 들불야학은 화폭에 남겨져 시민들과 계속 호흡하게 된다. 마지막 모습을 마주한 특별한 행사였다. 보람 되고 의미가 있다. 시대의 정신이 깃든 광천시민아파트,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