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혁명’은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민운동으로 전개됐다. 특히 2030 여성들의 주도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기존의 시위 참여 방식에서 벗어나 응원봉과 K-팝 노래를 활용해 집회의 분위기를 밝고 역동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정치적 표현의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았다. 2030 여성이 주축이 된 여의도와 광화문에서의 밤샘 집회, SNS를 활용한 선결제 문화, 농민들과 연대를 이룬 남태령 집회는 윤석열을 둘러싼 검찰과 권력층의 철옹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2030 여성들은 대선의 스윙보터(swing voter·부동층)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이 그때 그때 선거 때마다 필요에 의한 투표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여론조사기관 ㈜티브릿지코퍼레이션에서 4월 7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39세 여성 1천명을 대상으로 웹조사를 실시했는데, 2030 여성 5명 중 1명이 탄핵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30 여성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광장과 온라인 공간에서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는 경향이 있었다. 대단히 정치적이고 현실참여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10명 중 6명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 응답자들의 81.8%는 페미니스트라고 드러내면 ‘온라인에서 공격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높고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 한편 공개적으로는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기 꺼려하는 2030 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와 다양한 시민들과 연대하면서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번 대선에서 단순한 공약 나열을 바라지 않았다.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는 성폭력에 맞서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원했다. 특히 디지털 폭력으로부터의 안전과 그 실용적 해결을 최우선정책으로 꼽았다. 그밖에 경제적 불평등 해소, 임금 격차 해소, 안전한 임신중지 지원 등 현실을 바꿔줄 정책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구호나 슬로건을 보면 이런 점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차별 없이 함께 잘 사는 나라’, ‘여성의 일상은 전장이다’, ‘출산은 의무가 아니다’, ‘우리가 국가다’, ‘여성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구호에는 정치 무관심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유권자 2030 여성의 바램이 담겨있었다.

후보 시절부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건 윤석열은 여성을 사회적 갈등의 대상으로 만들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반복해왔다. 이로 인해 여성혐오와 배제가 정당화되는 분위기가 확산됐고, 대통령 당선 이후 정부 정책에서 여성과 젠더를 지워나갔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왔다는 궤변을 늘어놓다가 물러났고, 장관 없는 여성가족부는 존재감 없는 유령부처가 되어갔으며 성평등 정책은 후퇴했다.

이제 정치권이 2030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제도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 여성을 향한 폭력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성평등 실현을 지향하는 사회는 여성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 사회는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열기가 뜨겁다. 유세 현장마다 음악과 춤과 구호가 어우러져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조기대선을 치르기까지 ‘빛의 혁명’을 이끌어온 광장의 시민들에게 정치권은 너무나 큰 빚을 졌다. 그리고 그 ‘빛의 혁명’ 한 가운데 2030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행 계획과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광장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