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를 마주한 후부턴 오월 영령들의 희생이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6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지난 3일부터 나흘간의 황금연휴 마지막 날인 이날 광주의 날씨는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하며 변덕스러웠지만, 민주묘지를 찾는 발걸음은 줄을 이었다.

부모와 함께 온 자녀들부터 인솔자의 뒤를 따르는 단체 등 다양한 모습의 추모객들은 각자 찾아온 곳 앞에 서서 묵념과 준비해 온 꽃을 올리는 것으로 오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어버이날(5월8일)을 앞두고 부모님을 찾아온 추모객들도 눈에 띄었다.

제1묘역 5구역 34번에 안장된 고(故) 하태수씨를 찾아온 딸 하윤정(46)씨는 멀리서부터 세살 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묘비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묘비 앞에 도착한 후엔 술을 꺼내 놓고 두 번 절을 올린 뒤 묵념하며 추모했다.

이후 하씨의 아들은 “할아버지께 인사드리자”는 어머니의 말에 묘비를 조심스레 껴안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순 없었지만 하씨 모자는 계속해서 말은 건넸으며 묘 위에 술을 부은 후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하씨는 “민청학련 관련 활동으로 긴급조치 4호에 따라 구속돼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며 “이 때의 후유증과 건강 악화로 2004년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이어 “연휴를 맞아 인사를 드리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며 “계엄 사태를 직접 마주한 후부턴 아버지와 민주묘지에 함께 계신 분들의 희생이 더 깊게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민주묘지를 찾은 다수의 추모객은 하씨처럼 12·3 비상계엄 이후 ‘오월 광주’, ‘광주정신’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 구미 옥계동에서 온 최영철(44)씨는 “12·3 비상계엄과 최근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겪으며 자녀들과 함께 군부 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희생된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싶어 방문했다”고 밝혔다.

자녀 최수호(17)군은 “군부 정권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묘지를 직접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며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 땅에 계엄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 희생을 기억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 같은 관심은 민주묘지 방문객 상승으로 이어졌다.

연휴가 시작된 날부터 어린이날인 전날까지 사흘간 누적 방문객은 2천60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오월 첫 주말과 임시공휴일(4-6일) 방문객 2천347명보다 약 11% 증가한 수치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은 “탄핵 정국 영향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전국적 관심이 높아졌고 연휴가 겹치면서 방문객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더 많은 국민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도록 참배객 안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이철규열사추모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36주기 추모제에는 유가족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