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지나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땅에 언제인지 모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아주 여린 작은 꽃이 있다. 바로 봄의 전령사, 봄까치꽃. 조금 더 봄이 다가오면 봄까치꽃 보다 더 작아서 자세히 봐야 보이는 별꽃이 모습을 드러낸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인생에도 멈춰야 자신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을 때, 직장을 잃었거나 사업, 또는 장사가 아주 어렵게 됐을 때 등이다.

이기심은 자기를 우상화하고, 탐욕은 탐욕의 대상을 우상화한다

1980년,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전두환 일당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서신 중 “양심에 따라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유일한 길이며,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해 준다. 이기심과 탐욕은 가장 큰 죄악이다. 이기심은 자기를 우상화하고, 탐욕은 탐욕의 대상을 우상화한다.”고 언급했다.

이기심과 탐욕은 자신을 망치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 단체, 회사, 심지어 나라를 망치고, 국민의 삶을 도탄(塗炭)에 빠지게 한다. 윤석열과 내란세력들이 명백하게 보여줬다. 또한 김 전 대통령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이기심은 윤석열 자신을 우상화해 “비상계엄이 정당했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하는 등 도저히 사람이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궤변을 늘어놓게 만든다. 또한 탐욕은 탐욕의 대상을 우상화한다고 했다. 탐욕에 가득 찬 사람들이 모인 대표적인 집단이 사이비종교 집단이다. 탐욕 가득한 사람들이 탐욕의 대상인 교주를 우상화하고, 끝내 다 같이 자멸(自滅)의 길로 가는 것을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똑똑히 목도(目睹)하고 있다.

역사는 항시 우리에게 질문한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다섯 번째로 선 죽음의 문턱에서 43년 전, 옥중서신을 통해 마치 12·3 비상계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듯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는 항시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대는 어디에 서 있으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현재 무엇에 공헌하고 있으며, 후손을 위해서 무엇을 남기려느냐고. 세상이 악한 것 같아도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다. 이런 내적 갈망은 계기와 때를 만나서 꺾을 수 없는 민심으로 폭발하여 악(惡)의 지배를 좌절시키고 만다. 역사를 보면 많은 창조적 선구자들이 고독하고 절망적인 것 같아 보이는 투쟁을 전개한다. 그는 당대에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민심이란 변덕이 많고, 속기 쉽고, 이기적이며, 겁 많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는, 백성은 결코 그들의 안에서 울려오는 진리와 정의에 바탕을 둔 갈망의 소리를 오래 외면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안다. 선구자의 신념에 찬 노력과 희생, 백성들의 진리와 정의에의 궁극적 추종, 이것이 이 세상을 망하지 않게 지탱하는 이유이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도 내일의 성공에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윤석열 정부는 완벽하게 실패한 정부다. 민생, 정치, 외교, 안보 등 어느 것 하나 잘한 게 없으면서 더더구나 헌법적 가치를 위반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가의 존망(存亡)과 국민의 생명마저 위태롭게 했다. 완벽하게 실패한 윤석열 정부를 통해 민주시민들은 누구 때문에, 어떤 집단 때문에,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국격은 추락했는지, 국민의 삶은 더 피폐(疲弊)해졌는지 이제야 비로소 확실하게 안다. 윤석열과 내란 세력들이 잠시 운전대를 잡다 스스로 멈춰 세우자 거짓과 위선을 더욱 또렷이 직시하게 된 것이다.

E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상에는 의미심장한 실패라는 것도 없지 않다. 역사에는 소위 ‘지연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도 내일의 성공에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명백하게 실패한 윤석열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대한민국 역사는, 민주주의는 멈추지 않고, 더욱 발전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