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어둠이 내려앉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민주시민들이 똘똘 뭉쳐 114일 째 한줄기 강한 빛을 밝히고 있다. 혹자는 지금 이 시기를 구한말(舊韓末) 또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美軍政期)의 혼란과 격변의 시대로 묘사하기도 한다. 특히 미군정기에는 신탁통치(信託統治)와 관련해 좌 우의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뭐라고 지칭하건 간에 지금 이 시기는 궤변과 요설이 난무하고, 거짓이 참인 척하고, 불의(不義)가 정의(正義)인 냥 호도(糊塗)되는 혼돈(混沌)의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야말로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년 12월3일, 오후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친구가 ‘비상계엄선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처음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이어 문자가 들어왔다. 사실이라고 인지한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44년 전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공포감이 밀려왔다.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자마자 차를 몰고 5·18 민주광장으로 향했다. 40-50여 명의 시민들이 시계탑과 분수대 주변에 모여있었다.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분수대, 시계탑과 전일빌딩 245, YMCA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鐵瓮城)으로 느껴졌다. 마음이 다소 진정됐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5·18 영령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키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비상계엄이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새벽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왔다.

지도자가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 주간 국제에 기고한 글에서 위정자(爲政者)들에게 반민주·반민족적 요소를 쓸어버리고 내일의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위정자는 일체의 반민주, 반민족적 요소를 과감히 청산해 국민으로 하여금 그의 지도력에 깊은 신뢰를 갖게 하고, 또 그들이 지도자를 추종함으로써 맞이할 명일(明日)의 생활에 보다 나은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국민 사기를 앙양(昻揚)시키기 위해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6·25 남침 당시 인민군 치하에서 신음하던 우리들의 뇌리를 항시 떠나지 않은 것은 사변(事變) 전 일부 지도자 중에 “3일이면 평양가고, 1주일이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는다.”는 위세 좋은 장담(壯談)이었다. 이러한 무책임한 발언이 국민을 오도(誤導)하는데 얼마나 무서운 역할을 했던가를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도자는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마련해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릇 지도자는 허장성세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저수지도 둑에 난 작은 구멍을 방치함으로써 터질 수 있다. 지도자는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마련해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윤석열 탄핵 심판 장기화와 한덕수의 탄핵 기각 등으로 인해 어떤 것도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자유는 전취(戰取)하는 자의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 10월, 제7대 대통령선거의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자유는 전취(戰取)하는 자의 것이지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용기 있는 자의 것이지 주저하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자유와 행복은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써만 이룩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책임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합시다. 승리는 대중의 것이요 우리들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지도자들의 냉철한 판단력과 우리 다 함께 굳은 의지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