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됐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의 시각과 화가의 상상이 어우러진 제주도 풍경이 시와 그림으로 펼쳐진다. 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가 펴낸 ‘제주에 봄’(스타북스刊)이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작가가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 충분하다.

간결한 글과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그림이 실린 이 책은 누구나 부담 없이 보고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박노식 시인은 “제주에 관한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심상을 시로 풀어쓰는 방식으로 작품이 완성됐다”며 “시 전편 그 바닥에 흐르는 감정은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이별 등 여러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민 作 ‘표선’

이민 作'수산1리 큰동네'(감귤집)

‘기억을 지우려는 고통보다/차라리 그 기억의 고통 속에서/오늘을 살아가는 인내가/당신의 내일을 아름답게 만들지도 몰라요’
‘텅 빈 마음은/아주 오랜 기다림이 만들어낸 통증이에요./이럴 땐 가장 쓰라린 일들을 데리고/절벽에 올라 놓아버려야 해요.’
‘울지 않아도 계절은 찾아와요./그저 마음을 비우고 떠나면 되는 거예요./미끄러지듯 외길을 따라 혼자 걸을 때/가슴에는 이미 새길이 나 있을 거예요.’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은 일련의 시편들에는 갖가지 감정이 투영된 시적화자의 목소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시집에는 제주도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비롯해 새벽과 아침, 낮과 저녁, 밤 등 시간대별 풍경이 다채롭다.

노란 물결의 꽃들이 가득한 제주도 봄의 풍경, 해질녘 등대를 배경 삼은 붉은 바닷가, 새벽 하늘과 어우러진 해안가 등 책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그림과 이에 맞는 글귀들이 감성을 자극한다.

시인은 “그날의 날씨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시적 느낌이 충분한 날에는 글이 잘 써지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시집은 올 봄부터 가을까지 한 달에 20여편을 쉴새 없이 써내려간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번째 시화집이자 일곱 번째 시집인 이 책을 발간한 이후로 당분간 내면을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며 “현대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갈 때 겪는 어려움과 고단함 등에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시를 써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