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국내 저항 시인을 알리고 국내에 일본 진보 작가를 소개하는 데 몰두해 온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최근 일본에서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끈다.

김 교수는 최근 일본 시 전문지 ‘시와 사상’으로 등단한 뒤 일본에서 시집 ‘아들과 함께 보는 서울의 봄’(사진)을 출간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관점에서 일본 문학을 연구해오며 느낀 감성을 살려 소외되고 가려진 칙칙한 부분을 시로 써서 위로와 공감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그가 집필한 시를 보면 그의 시 경향이 나타난다.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형상화한 시 ‘암담한 겨울 버티기’다. 한일문제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현 상황과 진정한 한일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시에 담겼다.

김 교수는 “일본의 자민당 정권과 여기에 휘둘리는 매스컴 그리고 역사교육의 한계 등에서 느끼는 허탈감과 우리 내부의 문제를 의식하며 썼다”고 말했다.


암담한 겨울 버티기

열도에서 불어온 매서운 바람이
눈보라를 몰고 와 발길을 묶어놓은
우리의 만남은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고드름처럼 얼어붙은 겨울 한복판
뒷산 나무들은 메말라 있고
길가에 핀 동백은 제 빛깔을 잃었다

손가락 걸기로 새긴 언약
시들한 상추처럼 허물어지고
기다리다 지친 애태움이
살얼음이 되어 깔린 가슴

해역을 타고넘는 물결처럼
굽이치게 외쳐보아도
거대한 파도 속에 떠밀려 파묻히고 말더라

바다 건너 길거리로 나선 이들과 만나
커피잔에 안부라도 실어
건네고 싶은 허기진 시간

한줄기 희미한 햇살이
아침 문 앞을 서성일 때
찬 이슬에 입술이라도 댄다면
기다리는 초봄이 빨리 올까

지금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가로놓인
차디찬 그림자가 찾아와 통곡하는 깊은 밤

비스듬히 누운 원고 위에서
가냘픈 펜이 꿈틀거리다
불어대는 칼바람 소리에 주저앉는다

살을 에는 추위가 폭설을 몰고 와
미래를 향한 발길을 차단하는
우리의 만남은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