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장미를 그르케 특벨허게 맨들어 준 건 니가 니 장미헌티 들인 시간이여.” “넌 이거 까먹어 버림 못 쓴다잉. 니가 질들인 거엔 항시로 책임을 져야 되는 벱이여. 넌 니 장미를 책임져야 된다 그 말이여….”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본질과 철학적 성찰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찰나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또 다른 해석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갱상도 사투리 번역판 ‘애린 왕자’에 이어, 조부모의 발화와 임실과 남원에서 방언 조사 한 것을 바탕으로 번역했다는 심재홍의 전라북도 사투리 번역판 ‘에린 왕자’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찰지게 밀려드는 땃땃헌 정감과 함께 조곤조곤 나에게 말 건네는 것 같았다. ‘그랑께 말이여…. 난 뭣을 책임져야 할까이….’ 내 삶의 무게를 되돌아보며 읊조리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한때는 철학을 꿈꾸기도 했었다. 공자, 맹자, 데카르트, 소크라테스를 만나며 끝없이 쌓아 올린 물음표와 느낌표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서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함으로 존재할 것인가, 나는 진정 무엇을 알고 있으며, 내 안의 나를 알기 위해 나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접하면 접할수록 모호해지는 생각들을 명확하게 파헤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나만의 논리로 규정지어 외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은 그 무엇들을 바탕으로 나는 또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 철학을 향한 꿈을 접었었다.

삶 너머 인문학, 명상 인문학, 치유 인문학, 공존 인문학, 인문 고전 인문학, 트로트 인문학 등. 언제부턴가 인문학이 들어가는 프로그램들이 제목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인문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 사람 냄새 풀풀 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는 만큼,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따스한 바탕이 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딱히 이유도 알 수 없는 일상에서의 불안감, 결핍, 외로움에 대한 쉼, 숨 고름이 되기를 희망한다.

“인문학적 사유, 글쓰기”

얼마 전 간호학과 학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의사소통 능력향상 특강, 글쓰기 영역’으로 진행될 시간인 만큼 자꾸만 ‘글쓰기’에 대해 무게가 주어졌다. 취업을 생각해, 자기소개서 잘 쓰는 법을 해볼까, 환자와의 공감 능력을 키우는 글쓰기를 해볼까, 아니면 글의 장르와 구성을 시작으로 주제와 소재를 중심으로 하는 글쓰기를 해볼까,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이 번쩍, 고개가 끄덕여졌다. 결국은 글쓰기의 기본, 글쓰기의 바탕인,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였다. 자기소개서 잘 쓰기도 환자와의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글쓰기도 글의 주제와 소재 찾기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마음을 귀히 여기는 사랑이었다. 내 안의 나를 바탕으로, 서로의 마음에 말 건네는 소통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며 사람 냄새 풀풀 나게 하는, ‘인문학적 사유, 글쓰기’였다.

“내 비밀은 이거여. 겁나게 간단헌 거다잉. 맴:으로 볼 적에만 지대로 볼 수 있는 법이여잉. 중요헌 건 눈에 안 뵈아.” “중요헌 건 눈에 안 뵈아.” 에린 왕자가 까먹덜 않을라고 따라혔어.

열심히 살아온 2024년을 보내며, “암만, 중요헌 건 눈에 안 뵈아.” 내 안의 중요함을 찾아 다독이며 사랑 한 스푼, 그래그래 잘 살았다 응원 한 스푼, 살포시 올리며 미소 짓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