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1·2호기 수명 연장·건식 저장소 건립’ 현안 해결 ‘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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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사용 후 핵연료’ 2031년께 포화 영구 처분시설·관리 능력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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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에너지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 발전소 관련 사업은 저비용·고효율이란 미명 아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돼 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풀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하고 있다. 이현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문제들을 되짚어 보고,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본다.
/편집자 주

▲현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평가하자면?

-세계적으로 핵 발전을 두고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최강국 정책’은 핵 발전에 대한 옹호로 그치지 않고 있다. 현재 원전 정책은 앞선 정부에 대한 반대를 뜻하며, 정치 쟁점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차를 맞은 지금 에너지 정책은 혼란에 빠져 있다. 송전선로 문제로 이미 완공된 동해안 석탄화력발전소는 가동 중지 상태이고, 재생 에너지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호남과 제주에선 송전망 신규 접속이 중단되고 있다. 한전의 적자는 200조원을 넘겼고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은 침체 상태에 빠져 있어 총체적 난국이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과 관련해 공론화 과정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공론화가 실패했음에도 정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각각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위원회는 출범식 당일 시민단체 추천 위원 2명이 사퇴한 것을 포함해 위원회 활동 동안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최종 보고서에 위원 15명 중 6명이 서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공론화위원회(재검토위원회)는 정부가 추천한 위원장이 ‘공론화에 실패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이후 그 내용을 담아 책까지 출간할 정도였다.

특히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원자력 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와 핵 산업계는 ‘고준위 특별법이 없으면 전력 대란이 일어난다’며 법률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다. 특별법이 없어도 경주의 맥스터는 잘 증설됐고, 영광 한빛원전 지상부에 조성하기로 한 사용 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역시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설계 등 건설 절차에 돌입해 어불성설이란 말이 나온다.

정부가 공론화할 마음이 있다면, 기존 정부의 ‘형식적인 공론화 절차’에 대해 지역 주민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왜 고준위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고준위 R&D 사업이 연관돼 있다고 예상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원자력 발전소 내 저장시설 등은 현행 법률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정부와 한수원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소 내 저장시설을 계속 증축했다.

하지만 녹색분류체계는 다르다. 현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기후위기 대안이라는 미명 아래 핵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 ‘녹색’인지 여부를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다.

유럽을 비롯해 우리나라도 핵 발전이 녹색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 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고준위 특별법이 없으면 핵 발전은 녹색사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녹색사업으로 인정을 받아야 녹색 채권도 발행하고 예산 확보에 유리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준위 특별법이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고준위 R&D 사업이다.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은 8조6천억원 규모로 오는 2039년께는 약 20조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당장 고준위 처분장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연구가 이뤄져야 해 비용 중 상당액이 연구비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을 일부 활용하고 있지만, 추후 시설 건립 부지 조사와 처분·이송 용기 개발 등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와 관리기관 등이 정해져야 한다.

위 내용은 임시 저장소 포화에 따른 핵 발전소 가동 중단 등과 무관한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 등은 ‘전력 대란’ 같은 말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겁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난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11차례 법안 소위 논의가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찬반 격론이 오고 간 것처럼 보도됐지만, 사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여야가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

한 예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일반 행정위원회로 설치하고 추후에 중앙행정기관으로 변경 여부를 검토한다거나, 방폐물 관리 사업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수행하는 것 등이다.

이견이 드러났던 부분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용량을 설계수명 동안으로 한정해 지을 것인지, 아니면 수명연장을 고려해 운영 허가 기간으로 할 것 인지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안(김석기·이인선·김성원·정동만 의원)은 저장용량을 ‘허가 기간’으로 하는 것이었고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안은 ‘설계수명’으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핵 발전소 지역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우려하는 점은 처분장 부지 선정이 지연되거나 부지 선정 과정에서 기존 핵 발전소 지역이 그대로 처분장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즉 명목상 ‘발전소 내 임시 저장’이지만 그것이 ‘사실상 핵폐기장’으로 고착되는 상황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어느 법에도 이를 금지하거나 고려한 법안이 없다. 문제는 계속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논의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지금의 22대 국회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 정부 소관 핵폐기물 처리 등을 위한 관련 기구가 없다. 지금 어떤 부서가 이를 담당하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고준위 방폐물 재검토위원회가 해산된 후 지금까지 정부와 지역 주민, 시민단체들이 소통 할 수 있는 창구조차 없는 상태다.

지난 2018년 재검토위원회 구성을 위해 ‘재검토 준비단’을 구성한 적이 있었지만, 마지막 논의가 파행으로 끝난 뒤 고준위 문제를 논의할 기구조차 없는 상태인 셈이다.

관련 문제를 소통하고 의견을 나눠야 할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국회는 고준위 특별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22대 국회가 법을 제정하더라도 실행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달라.

-문재인 정부에서 노후 핵 발전소 수명 연장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지금 논란이 되는 발전소 내 저장용량이 결정된 상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재검토위원회에 정부, 지역 주민, 시민사회단체, 핵 산업계가 함께 지속적으로 소통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정부는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는 결국 파행으로 끝난다”며 중립적인 전문가들로만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더 큰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은 정부가 지나치게 공론화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면, 그 결과에 정부 또한 따를 준비가 돼야 한다.

정부가 공론화의 결과를 만들어 놓고 그쪽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를 반복한다면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끝없는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끝으로 국내 원전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은.

-정부는 끊임없이 핵 발전소를 새로 짓고자 하지만 신규 부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 신규로 핵 발전소를 짓고자 하는 나라들은 있지만 지난 20년간 이 나라에서 운영 중인 핵 발전소 숫자는 모두 줄었다.

장시간 소요되는 건설 기간,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 등 더 저렴한 발전소의 등장, 핵폐기물과 해체·안전 규제 비용 증가, 지역 주민의 반대 등 다양한 이유에서다.

선진국에서 핵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부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더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할 시기다. 더불어 대책 없이 핵폐기물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앞으로 예상되거나 이미 만들어진 핵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안재영 기자·영광=김동규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