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나태주 시인의 소확행 키워드는 집,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혼자서 부를 노래이다.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저마다가 다른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겠지만 시인의 소확행처럼 일상 속 소소한 기쁨들은 팍팍한 삶에 마치 기폭제와도 같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쁜 일을 꼽을 땐 특별한 것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렇지만 저마다가 다른 행복의 기준이 있고 삶을 행복하게 하는 조건이 다 다를 수밖에 없어, 이게 행복이라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의 기쁨’을 주는 일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어느 주말 차를 타고 멀리 시내 외곽으로 드라이브 갔던 기억, 케이블카를 타고서 창밖을 쳐다보며 신기해했던 일, 비를 쫄딱 맞고 있을 동생 생각에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간 일, 한여름 시원하게 마루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보던 기억….

소소한 행복의 기억들은 찾자면 셀 수도 없이 많다.

근래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올해 생일 생전 처음 타본 케이블카다. 어릴 적 꿈속에서는 자주 봤었지만 실제로는 타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일 作 ‘Family(가족)’ / 작가 제공

생일 날짜가 조금 독특해 매년 행사가 너무 많아서 늘 정신없이 지나는 게 부지기수라 올해도 글렀거니 했지만, 박정일 작가 작품 속에 있는 케이블카를 탄 동물 가족들처럼 빨간 케이블카를 타고 석양이 물든 바다를 바라본 기억은 머릿속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추억이 됐다.

이같은 소확행의 종류는 수도 없을 테지만 가장 많은 소확행의 추억을 쌓을 이들은 아마 ‘가족’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바로 가족이라는 구성단위가 나와 엮여있는 가장 가깝고도 끈끈한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요즘 호랑이 같던 아빠가 나이가 든 것같이 느껴져서 그런지 몰라도 어릴 적 아빠와의 추억이 간간이 떠오른다. 그 시절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이 무섭긴 했어도 정이 많은 건 감출 수 없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세 살쯤 너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잠 못자고 밤새도록 안고 있던 기억, 퇴근길 손에 들려있던 검정 비닐봉지 속 칸쵸 세 개, 아빠 팔에 올라타 신호등을 건너던 기억은 여전히 조각 사진처럼 간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독자들은 가족과의 기억으로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필자의 기억처럼 가족 간의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을 소개해보자면 고흐의 ‘첫걸음마’를 들 수 있다.

정확히 예술가로서 창작의 고통을 삶에 그대로 투영시켜 보여준 고흐의 삶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마음대로 소재를 구할 수 없을 쯤 영원한 고흐의 후원자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았고, 고흐는 귀여운 조카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

밀레를 회화의 아버지로 생각했으며 그의 작품을 보면 숨 쉴 수 없는 감동이 느껴진다던 고흐는 테오에게 요청했던 밀레의 작품을 받아보고, 조카에 대한 감흥을 담아 자신만의 버전으로 그려냈다.

두 작품을 보면 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밀레의 것보다 고흐의 작품이 훨씬 더 유명하다. 고흐만의 독특한 색감과 표현 그리고 구불구불한 붓 터치는 물론이며 새롭게 재해석해낸 형태와 묘사력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 농사일을 하다말고 밭으로 자신을 보러온 갓난이에게 두 팔을 벌려 이리로 오라는 제스처를 하고있는 아빠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아빠에게 가려고 안되는 걸음을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에서 가장 일상적이지만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표작이 넘치는 고흐지만 일상의 소확행이 담긴 그것도 가장 끈끈한 가족과의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첫걸음마’는 최고의 힐링 작품이라 여겨진다.

박정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을 보면 구성원들이 모두 의인화돼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독특한 것은 모두가 홀가분한 모습으로 혹은 일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느끼는 작은 일상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작가이기에 소재 또한 어렵지 않다. 게다가 복잡한 세상 속 작품까지 복잡할 필요가 있냐는 작가의 발언처럼 관람자들 또한 작품을 감상하며 편안한 감정을 느끼고 돌아가길 바란다.

소재가 되는 고양이와 개 그리고 새의 모습이 정겨우리만큼 친근하고 귀엽게 표현된 모습에서는 반려동물들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읽혀진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작가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반려동물이라고 했다. 삶에 큰 위로와 행복을 주며 긍정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하게 만들어 주는 이들은 작가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반려동물들을 통해 인간과 반려동물이 서로 공감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마치 소확행처럼 가족의 소중함과 함께 화폭에 담는다. 그렇다. 행복은 그리 먼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자가 마주했던 작가는 ‘행복할 줄 아는 이’였다는 점이다. 늘 한결같았고 그림에도 열심히 했으며 꾸준히 전시회도 열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이 행복해 보였다.

행복은 습관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기쁘게 느낄 줄 알아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는 행복의 ‘기준’이나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일보다는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며 필자 또한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행복에 다다르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서기도 한다. 누군가 그랬다. 태어나며 ‘존재한다’라는 삶의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에 신은 당신이 무엇을 하건 무엇이 되건 관심이 없다고…. 다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관해서만 오로지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슬렁슬렁, 매일매일 행복을 온몸으로 느껴가며 찬찬히 살아가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이현남·전남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