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진도에서의 풍경이다. 진도는 문화예술특구지역이어서 면단위마다 문화전수관이 있다. 지산면 전수관을 찾았다. 수강생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구심이 사라졌다. 청소년, 청년, 노인은 물론 일과를 마친 중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예술에 탐닉해 있었다. 얼추 20여명의 주민들이 구음 장단에 맞춰 몸동작을 하느라 열기가 후끈했다. 동네 사람만이 아니라 면소재지에서 한참 떨어진 소포리, 심지어 광주에서도 온단다. 대부분은 요일별로 진행하는 진도 만장, 들노래, 북춤 등 전수관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한단다. 열혈 학습자들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주민들이 전수관으로 밤마실을 다니는 상황은 다른 면도 마찬가지였다. 진도사람들, 꼭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흥과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진 이들이다.

사실 지산면 전수관을 찾게 된 것은 지난 6월 진도-성주 영호남 교육교류 때 보여준 지산초등학교 아이들의 진도소포걸군농악 공연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진도소포걸군농악은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 39호로, 임진왜란 때 왜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군작전 놀이에서 유래되었다. 걸군농악은 군작전 놀이인 만큼 학식과 지혜를 갖춘 집사가 농악대를 통솔한다. 지산초등학교는 막 저학년티를 벗은 3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농악대가 된다. 저학년은 소고를 들고, 고학년은 장구와 꽹과리로 흥을 돋우며, 북으로 사기를 올린다. 농악대에 빠질 수 없는 상모군들이 유려하게 상모를 돌리니 마당은 화려하다. 농악대는 집사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태극으로 감았다가 풀어내고 일자형 대형, 중첩으로 대형을 구성하는 등 분산과 집중, 휘몰아치다, 고요해 지는 정중동 기법을 구사하며 마당을 쥐락 펴락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이 농악을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환호와 탄성으로 장내를 뒤바꿔 버렸다.

국악은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 맥이 끊기기 십상이다. 그런데 진도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가 중심이 돼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어 나가고 있어 맥이 끊길 염려는 없다. 더구나 지산면은 진도교육지원청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연결하는 이른바 ‘전통예술 이음학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터여서 더욱 활발했다. 그 뿐인가 며칠 전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린 진도국악고등학교 진향제에서 학생들이 사물 등 우리 악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신명을 넘어 마치 신기 들린 듯하였다. 숨이 멎는 듯,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국악과 학생들의 창작곡도 수준급으로 우리 음악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전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아는 것이 존재를 파악하는 상태라면, 좋아하는 것은 아직 자기의 것으로 삼지 못한 것이고 즐기는 것은 완전히 터득해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하고 있는 경지라고 했다. 이른바 즐기는 것이 밥이 되는, 노동과 놀이가 일치되는 세상이다. 예술이 밥이 될 수 있을까? 산업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속된 말로 ‘예술이 밥 먹여주냐’ 가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후기자본주의로 접어들고 문화강국이 된 마당에는 양상이 다르다. 예술이 밥이 된다. 아니, 앞으로 살아갈 시대는 예술이 삶에 편재돼야 살아갈 수 있다.

인구소멸 위기가 닥치고 있다. 진도는 어떻게 그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전통문화의 씨앗이 날 것으로 있다는 게 큰 이점이다. 이게 착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인구소멸 시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무형문화들을 기반으로 예술대학의 분원이 진도에 유치되고, 젊은이들이 예술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창작소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제2의 방탄소년단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획사가 나서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사회적으로는 진도에서라면 자신만의 고귀하고 신비한 신화를 펼칠 수 있다는 믿음이 현실화되는 고장이면 어떠할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진도를 거쳐야 한다는 묵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문화도시로서의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