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기 때문이다… 중략(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인간이 서로에게 방문객이 돼 환대받는 사회이면 좋겠다. 지난 50년 전 고교를 졸업한 필자의 동창생은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 현장으로 나아갔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인생이란 B(탄생)와 D(죽음) 사이에 있는 C(선택)이다”는 말을 남겼다. 생각해 보면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좌고우면, 시행착오, 실수, 집착 등에 의한 번민과 갈등으로 쓴맛 매운맛의 좌절과 절망의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 누가 있을까?

얼마 전 필자는 1974년 고교 졸업 50주년을 맞이해 1년여 간의 준비 끝에 베트남 다낭시를 여행했다. 고교 시절 수학여행의 설렘임을 안고 다녀온 이번 여행에는 가족 197명이 참여해 8개의 조로 나눠 3대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졸업 50년 만의 동행 속에 낯섦도 있었지만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3박5일간의 일정은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잘 살아왔구나” 위로하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스토리를 경청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이란 계획된 일정 중에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는 감동적 순간들이 있다.

격동의 1980-90년대를 겪으면서 21C를 맞이했던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를 벗어나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성취 중심의 사회에서 부딪치면서 살아왔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목적에 따라 다르게 변화되고 부서지면서 고통을 받기도 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역량을 발휘하면서 도전했던 열정적 삶의 스토리를 간직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스토리는 미완성이지만 과거를 딛고 가족들과의 소중한 사랑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배려의 휴머니즘이었다.

인간이 쫓는 부귀영화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부귀영화 뒤에 남은 뒷모습이, 난향처럼 백 리를 가고 묵향이 천 리를 가고 덕의 향기가 만 리를 간다고 하니 인간이란 무릇 덕의 향기만이 그윽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소설을 썼던 켄 키즈(1935-2001)의 말이 생각난다. 사과 속에 들어있는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에 들어있는 사과는 셀 수 없다. 한 인간이 남긴 덕의 씨앗이 미래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우주 속 여행이다.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러쿵저러쿵 우물쭈물하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의 “인생 그 자체, 인생의 현상, 인생이 가져다준 선물은 숨이 막히도록 진지하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필자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인 1968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놀라운 뉴스를 접하게 된다.

미국 NASA에서 발사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이라 불리었던 아폴로 8호가 지구궤도를 벗어나 달 궤도를 진입하면서 해돋이가 아닌 지구돋이라 명명된 외로운 푸른 구슬의 지구의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시인인 아치볼드 매크리시(1892-1982)는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여전히 우리는 모두 우주를 달리고 있는 지구의 승객으로 인생은 짧고 허망하지만 우주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공동체적 가치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

이제 졸업 50주년 동행의 꽃가마를 매고 땀 흘렸던 친구들 강수, 봉현, 종문, 상현, 천석, 용덕, 세균, 한규, 주, 형근, 기근, 성용, 경석, 한승, 정준, 그리고 미국에서 온 용교, 상용, 러시아에서 온 석방, 중국에서 온 종일 등의 귀한 이름을 마음에 새겨 본다.

또한 이러한 동행에서 얻은 영감과 그간 친구들이 쌓은 경륜과 경험을 활용해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자들에게 공동체적 가치인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