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백운산은 전남에서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산이 높은 만큼 골짜기가 깊고 숲 또한 울창하다. 큰 산 백운산의 수많은 골짜기에는 농경지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농경지를 기반으로 마을을 이뤄 조상대대로 살아왔다. 그러니 광양 사람들에게 백운산은 어머니 같은 모성의 산이 아닐 수 없다.

백운산 주능선 마지막 봉우리인 노랭이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 사이에서 형성된 수평천은 광양시 옥곡면 골짜기를 따라 흐른다.

깊은 골짜기와 넓지 않은 농경지,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이 고향집처럼 정겹다. 옥곡면소재지에서 4㎞ 정도를 달려 국사봉랜드 입구에 도착했다. 길가에서 만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소식을 전해준다.

국사봉랜드 입구는 백운산둘레길 6코스 시작점이면서 국사봉 등산로 초입이다. 국사봉랜드를 내려다보며 임도를 따라서간다. 뒤돌아보니 조금 전 지나왔던 수평천 주변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국사봉랜드 뒤쪽 산비탈에는 다랑이논과 두세 채의 민가가 있다. 논두렁은 어느새 파릇파릇해졌다.

다랑이논을 지나 대치재로 가는 산길로 들어선다. 제법 가파른 경사지에 낙엽이 길을 덮고 있어 가픈 숨을 몰아쉰다. 대치재에 오르니 국사봉 가는 길과 대방재 가는 길이 갈린다.

대치재는 광양시 옥곡면 수평리에서 광양시 옥룡면 율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옛날 남쪽 지방에 살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래서 백운산둘레길 6코스를 ‘선비누리길’이라 부른다. 대치재에서 율천리로 내려가는 길은 지금은 숲이 우거져 다닐 수 없다.

대치재에서부터는 능선을 따라서간다.

백운산 주능선 마지막 봉우리격인 노랭이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다. 산줄기는 고도를 낮추면서 광양만까지 뻗어간다. 이 능선을 억불지맥이라 부른다. 등산로는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고도를 높인다. 나무줄기에서는 한겨울과 달리 생기가 느껴지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경쾌해졌다.

대치재와 대방재 중간지점인 매내미재에 도착하니 사각정자가 기다리고 있다.

매내미재는 옥곡면 매남마을에서 옥룡면 옥동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였지만 지금은 희미하게 길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정자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정자에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 또한 트레킹의 즐거움 중 하나다. 우리의 트레킹은 함께 걷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식사하는 삼박자로 이뤄진다. 비슷한 연배의 네 부부가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아름다운 동행’은 은퇴 후 생활을 윤택하게 해준다.

사각정자를 지나면서부터는 임도가 이어진다.

임도 주변에는 소나무와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공생을 한다. 임도를 걷다보면 가끔 하얀 눈이 쌓인 백운산 정상과 억불봉이 고개를 내민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는 고요하고 유연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행진곡이 돼준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는 고요하고 유연하다. 바람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행진곡이 돼준다.

대방재에 도착했다. 대방재는 옥룡면 대방마을과 진상면 웅동마을을 이어주던 고갯길로 ‘큰 재’라는 뜻이다. 웅동마을 사람들은 자기마을 이름을 따서 웅동재라 부른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종종 편백나무숲을 만난다. 곧게 솟은 편백나무숲이 질서정연하다. 편백나무가 내뿜어주는 피톤치드가 그윽한 향기를 안겨준다.

종종 편백나무숲을 만난다. 편백나무가 내뿜어주는 피톤치드가 그윽한 향기를 안겨준다.

얼마 전까지도 얼음 속에서 숨죽여 흘렀을 계곡물이 이제 당당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계곡물이 경쾌하게 흐르면서 봄의 소리를 전해준다. 송학사라는 조그마한 사찰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가 내 마음을 맑게 해준다.

송학사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대방마을과 옥룡계곡 주변 농경지가 앞산과 함께 바라보인다. 대방마을은 원래 연화촌이라 불렀다.

연화촌이란 마을 형국이 연꽃을 닮았다 해 어느 도사가 뒷산을 달에, 마을을 꽃에 비유해 ‘달뜬 아래 꽃다운 마을’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대방이란 규모가 큰 마을에 큰 인물이 나는 고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대방마을을 지나자 옥룡계곡(광양동천) 주변에 형성된 좁지 않은 농경지가 백운산 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옥룡계곡은 백운산이 만들어낸 계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주변 농경지 역시 넓은 편이다. 백운산둘레길은 옥룡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위에 백조 한 마리가 앉아있고 청둥오리 십여 마리가 유영을 하고 있다.

옥룡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상에서 억불봉까지의 백운산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백운산 주능선은 해발 1천 m가 넘기 때문에 어제 온 비가 눈으로 내려 7부 능선 이상은 산색이 하얗다.

옥룡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상에서 억불봉까지의 백운산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백운산의 품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다.

백운산 주능선은 해발 1천m가 넘기 때문에 어제 온 비가 눈으로 내려 7부 능선 이상은 산색이 하얗다. 산자락 평지에는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렸는데, 백운산에는 눈이 내린 것이다. 겨울과 봄을 동시에 보는 것 같다.

왕금한옥마을이 눈길을 끈다. 웅장한 백운산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한옥마을은 광양시가 도시민을 농촌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해 조성했다. 2017년 한옥마을이 완공돼 현재 25세대가 입주해 있다. 왕금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금을 많이 채광한 왕금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왕금한옥마을 전경. 웅장한 백운산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한옥마을은 광양시가 도시민을 농촌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해 조성됐다.

한옥마을 옆 옥룡계곡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다. 추동섬이다. 추동섬은 2002년 8월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루사’때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하천 가운데에 생긴 자연형 하천섬이다. 광양시가 2019년 치유와 안식의 공간으로 승화시키고자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추동섬은 2002년 8월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루사’ 때 물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하천 가운데에 생긴 자연형 하천섬이다.

추동섬에는 순천만 정원을 닮은 하늘정원과 잔디광장이 조성돼 있다. 잔디밭 가운데로 산책로가 나 있고, 정자도 있어 쉼터역할을 해준다. 하늘정원 위 하늘전망대에 서니 백운산 주능선은 물론 백운산에 감싸인 마을과 농경지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추동교를 건너 도로를 따라 5분 쯤 걸으니 백운산자연휴양림 쪽에서 내려오는 추산천이 나온다.

추산천은 추동섬 아래쪽에서 옥룡계곡(광양동천)에 합류된다. 오른쪽 낮은 산줄기 너머로 운암사 약사여래입상이 고개를 내민다.

운암사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옥룡사지 인근에 절터로만 남아있던 곳에 1993년 불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옥룡사지는 폐사지로 그대로 두고, 운암사지만 복원작업으로 동백숲 오솔길로 옥룡사지와 통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운암사 입구를 지나 잠시 도로를 따라가자 옥룡사지주차장이다. 옥룡사지주차장은 백운산둘레길 1코스와 7코스의 시작점이자 오늘 우리가 걸었던 6코스의 종착지이다. 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훈풍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광양 백운산둘레길 6코스는 광양시 옥곡면과 옥룡면을 가르고 있는 산줄기를 넘어 옥룡사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옛날에 남쪽 지방에 살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갈 때 넘어 다니던 고갯길을 지난다고 해서 ‘선비누리길’이라 부른다.
※코스 : 국사봉랜드 입구→대치재→대방재→대방마을→추동섬→옥룡사지주차장
※거리, 소요시간 : 12.7㎞, 4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국사봉랜드 입구(전남 광양시 옥곡면 대치로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