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別徐穉嘉禮輔移居坡山(송별서치가례보이거파산) - 자하 신위
問君何事厭囂塵 盡室坡山訪隱淪(문군하사염효진 진실파산방은륜)
酒熟茶香花月夕 忘年記否舊東隣(주숙다향화월석 망년기부구동린)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하면서
가족을 데리고 파주로 은거 하려는가
꽃 피는 달밤이 되면 친구여 기억하소.

지금의 교통수단으로 보면 서울과 파주의 거리는 한 시간이 채 못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 오고간 거리는 며칠이 소요됐을 것이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이고 보면 소식까지 전할 수 없는 딱한 실정이다. 친구 ‘서치’란 사람이 파주로 이사를 간단다. 보내기 아쉬워 한 순배 막걸리를 놓고 시지(試紙) 위에 휘두른 시상이리라.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해서, 가족을 다 데리고 파주로 은거하려 하는가’ 물으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친구여! 옛 이웃이었던 나를 꼭 기억해주시게(送別徐穉嘉禮輔移居坡山)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확인하고 농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조정에 수차례에 걸쳐 탄원을 했던 인물이다. 1816년에는 승지로 1818년에 춘천부사로 나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방 토호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맞서다 파직 당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하여서 / 가족을 다 데리고 파주로 은거하려 하는가 // 술 익고 차가 향기로운 꽃을 피는 달밤이 되면 / 친구여! 옛 이웃이었던 나를 꼭 기억해주시게’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서치를 이별하려고 가례보를 파주 우거로 옮기며’로 번역된다. 친구는 속세가 싫어졌다며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고 한다. 꽃이 만발한 봄날에 함께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던 친구. 이젠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는 공간에 넣어둬야 한다. 흔히 이별을 앞둔 사람은 슬픔과 눈물을 언급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저 담담한 추억을 더듬는다.

시인은 친구와 정이 두터웠던 이별을 목전에 두고, 파주지방으로 이사를 떠나가는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하여서 / 가족을 데리고 파주로 은거하려 하는가’라고 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앞에서 한껏 미화하고 찬양한 뒤에 뒤에서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해버리면 독자가 느끼는 상실감은 배가 된다.

화자는 이젠 후정을 담아 친구에서 부탁하는 한 마디는 보다 간곡해 보인다. 술이 익고 차가 향기로운 꽃을 피는 달밤이 되면, 친구여! 옛 이웃이었던 나를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3구의 언급에서 추억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울수록 이별 후의 심정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問君; 그대에게 묻네. 何事: 어떤 일로. 厭 塵: 진세를 싫어하다. 盡室: 가족을 다 데리고. 坡山: 파주,訪隱淪: 은거 처를 찾아 옮기는 뜻. // 酒熟: 술이 익다. 茶香: 차향이 그윽하다. 花月夕: 꽃이 피는 달밤. 忘年: 잊지 말자. 記: 기억하다. 否: 여부. 舊東隣: 옛 이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