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13)
이 밤에 둘이 함께 저런 재가 되고 있구나
2023. 08. 08(화) 19:40 가+가-
雪夜獨坐(설야독좌) / 문곡 김수항
破屋凄風入 空庭白雪堆(파옥처풍입 공정백설퇴)
愁心與燈火 此夜共成灰(수심여등화 차야공성회)
기운 집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빈 뜰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데
시름에 등잔불 더불어 재가 되고 있구나.

동짓달 기나 긴 밤이라 했다. 초저녁부터 잠이 들기 시작하면 겨우 자시(子時·11시-1시 사이)가 되면 잠에서 깬다. 엎치락뒤치락 잠을 청하지 못하고 온갖 궁리를 하게 된다. 밖에도 나가 보고, 책도 보아보지만 뒤척인 밤은 좀처럼 잠을 청해오지 못한다. 결국은 혼자 앉아 깊은 독백에 빠진다. 이는 분명 독좌(獨坐)일 경우다. 기운 집에 스산한 바람이 싸늘하게 들고, 빈 뜰에는 하얀 눈이 깊숙하게 쌓여가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밤에 둘이 함께 저런 재가 되고 있구나(雪夜獨坐)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으로 조선중기의 문신이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를 거쳐 1651년에 장원급제를 했던 인물이다.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김수흥과 함께 대공설을 주장했으나, 남인이 주장한 기년설이 채택되자 벼슬을 내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호 문충(文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기운 집에 스산한 바람이 싸늘하게 들고 / 빈 뜰에는 하얀 눈이 깊숙하게 쌓여가고 있네 // 시름겨운 마음으로 등잔불과 더불어 하고 있으니 / 외로운 이 밤에 함께 저런 재가 되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제목은 ‘눈 오는 밤에 홀로 앉아’로 직역된다. 차가운 겨울에 내리는 흰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머리가 희어지고 몸이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수가 많다. 겨울은 몸의 폐장(閉藏)과 노쇠(老衰)를 뜻하고 있음을 보이고, 흰색으로 내리는 눈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음을 뜻하고 있음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도 밤에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시상 주머니는 넘치는 듯하다. 기운 집에 스산한 바람이 들어오고, 빈 뜰에는 하얀 눈이 점점 쌓여간다고 했다. 선경의 그림자는 음침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더하게 된다.

화자의 내뱉은 심회는 시들어가는 등잔불과 시름겨운 자신과의 비교, 늙음을 재촉하면서 타들어가는 잿빛과 동일시하거나 비교해 보인 그릇은 넘친다. 시름겨운 마음으로 등잔불과 더불어 하고 보니, 이 밤에 둘이 함께 재가 되고 있다고 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사위어간 등잔불을 화자와 치환시키는 시적인 착상이며, 타다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만해의 생각까지도 스며서 나온 느낌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破屋: 기운 집. 다 쓸어져가고 있는 집. 凄風入: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다. 空庭: 빈 뜰에. 빈 정원에서는 白雪: 하얀 눈. 堆: (많이) 쌓이다. // 愁心: 시름에 겨운 마음. 與燈火: 등불과 더불어. 등불과 함께. 此夜: 이 밤. 共成灰: 함께 (저런) 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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