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가 그립습니다 / 이현
2023. 07. 13(목) 20:13 가+가-

이현 아동문학가

“거울방학이 왔어요….”

목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천천히 ‘겨’라고 말해도 자꾸만 ‘거’로 발음이 될 때가 있었다. “거울이 아니라 겨-울! 겨-울!” 선생님의 입모양을 따라 천천히 발음해 봐도 소용없었다. 나는 분명 ‘겨’라고 말하는데 ‘거’가 되고 아이들은 자꾸만 나를 따라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한동안 ‘겨’로 시작되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입을 꼭 다문 채 침만 꿀꺽 삼켰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낸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 등장하는 아이도 말을 더듬는 아이다. 아이는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까마귀, 아침 하늘에서 희미해져 가는 달의 소리다. 하지만 아이는 그 어떤 것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 입을 여는 순간,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리고,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 소리를 낼 수 없다. 달의 드-는 마법처럼 아이의 입술까지 지워 버려 아이는 그저 웅얼웅얼, 입 안 가득 소리가 맴돌 뿐이다.

“제발, 제발….”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인 아이. 언제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말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오늘은 발표를 해야 하는 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보세요.” 선생님 말에 낱말들은 어느 새 아이의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키고,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아이, 아이의 마음 가득 눈물이 일렁인다. 학교로 마중 나온 아빠는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아이를 강가로 데려가 강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빠의 말에 아이는 흐르는 강물을 보고 또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말을 듣고 다시 바라본 강물은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바위에 부딪치고, 부서지며 흐르고 있었다. 언제나 거침없이, 당당하게 흐르는 줄만 알았던 강물의 흐름이 아니었다. 때론 막히고, 때론 부딪치면서도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물살도 달랐다. 빠르고 거친 물살도 있었고, 잔잔한 물살도 있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살도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고 싶을 때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떠올리며 울음을 삼켰다. 자꾸만 뒤틀리는 입술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과 키득거리는 비웃음에 말하기 싫을 때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떠올리면 말 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발표시간,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아빠와 함께 걸었던 강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소리들이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 옴짝하지 않아도, 낱말들이 입 안 가득 뿌리를 내려 혀와 뒤엉켜 버려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부딪치고 부서져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를 떠올리며 또박또박 천천히 소리 내어 말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아이만의 방법과 방식으로.

“거, 거, 거울방학이 왔어요….”

거울 앞에 앉아 발음 연습을 하는 딸을 향해 엄마는, 한 번도 다그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조용히 강을 따라 걸었던 그림책 속 아빠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며 용기를 갖게 하셨다. 덕분에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오늘 따라 더욱더 그리운 엄마, 이 세상 모든 아빠와 엄마들의 응원과 기다림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빠르게 또는 천천히 각기 다른 각자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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