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로부터 이매리作 ‘지층의 시간’, 안유리作 ‘스틱스 심포니’, 리밍웨이作 ‘더 투어리스트’ 나무상자(앞쪽)와 ‘편지쓰기 프로젝트’

커다란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암막 공간에 들어서면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16분 가량의 영상이 펼쳐진다.

전시의 첫 공간을 채운 안유리 작가의 영상설치작품 ‘스틱스 심포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 흐르는 강을 뜻하는 ‘스틱스’는 안 작가의 작품 속에서 4개 이야기로 구성된 ‘교향곡’으로 만들어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8명의 여성들이 세상을 떠난 여성 시인들의 시를 낭독하는 작품으로, 고정희(5·18민주화운동)·구리하라 사다코(히로시마 원자폭격)·비스와바 심보르스카(나치·소비에트)·마야 안젤루(흑인 민권운동) 네 명의 작가를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낸다.

문학과 현대미술 그 사이의 연결을 탐구하는 ‘시의 정원’전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나봤다. 이번 전시는 전남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거나 전남 출신 작가와 함께한 작업을 선보이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장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학과 미술을 다루고 있다.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서는 과거의 시간들이 이루고 있는 지층의 세계가 펼쳐진다. 강진 출신인 이매리 작가의 ‘지층의 시간’에는 에즈라 파운드의 시, 밥 딜런의 노래, 구약성서의 제네시스, 금강경 등 수많은 텍스트들이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로 쓰였다. 작품은 작가의 탯자리가 어느 날 발굴의 현장이 된 것에서 시작한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찾은 현장에서 작가는 자신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발굴의 터를 가장 거부감 없이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런가 하면 전남 지역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난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들도 눈에 띈다. 대만 출신 리밍웨이 작가와 소설가 정지아가 협업한 ‘더 투어리스트’다. 12개의 나무상자에는 총 12번의 여행과 관련된 각 나라의 기념품들이 담겨있다. 이는 여행을 추억하게 해주는 물건임과 동시에 관객들을 그 여행지로 초대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벽면에는 정 소설가와 떠난 구례 여행 사진들이 프로젝터로 비춰진다.

바로 옆 공간에는 ‘편지쓰기 프로젝트’도 자리잡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부재하는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관객들은 아담한 방 한 칸에 들어가 편지 쓰는 행위를 통해 일상 속 관계 맺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동선을 따라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임흥순 작가의 영상 작품 ‘백년여관’이 관객들을 맞는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완도 출신 소설가 임철우의 동명소설 ‘백년여관’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소설 저변에 깔린 죄의식과 작가적 책임감이 작품의 고민 지점이다.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작은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임 작가는 광주·제주·여수·완도 등지를 돌아다니며 부표, 나무, 폐조개 등을 모아 만든 ‘백년 모빌’도 선보인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 관심 갖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과 함께하는 동식물들, 자연과 환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시각화해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오는 6월4일까지 이어진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