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9·完)활용방안 좌담회
“광주정신 담긴 ‘봉심정’ 미래 유산으로 남기자”
5·18 전 민주역사 선양·사료 수집 아카이브 구축 필요
공간 복원 후 광주만의 민주화운동사 기록관 설립해야
2022. 11. 30(수) 20:04 가+가-

197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사랑방이었던 ‘봉심정’ 의미와 향후 활용방안 등을 논의하는 좌담회가 지난 29일 본사 TV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김영근 기자

광주정신이 담긴 민주역사를 1970년대를 기점으로 재정립하고 선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민주인사들은 광주매일신문 주최로 지난 29일 오전 본사 스튜디오에서 열린 197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 활용방안 좌담회’에 참석해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70년대부터 이미 네트워크를 조직화한 민주인사들을 기틀로 한다. 각 분야에 뿌리내린 민주정신이 있었기에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봉심정의 옛주인 김정길씨를 비롯해 이강, 김상집, 전용호, 이재의 등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이 참여해 봉심정의 가치와 활성화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70년대 초 전국의 최초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된 함성지 사건과 민청학련, 전남대교육지표사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이들은 5·18민주화운동을 기준으로 선양되는 민주역사를 그 이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적 표면에 드러나기보단 숨어서 활동한 수많은 민주열사들은 70년대부터 봉심정을 중심으로 이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조직화됐으며, 이들은 각 분야에서 민주정신을 뿌리내리고 활발한 활동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광주시 남구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위치한 봉심정은 1970년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광주·전남 민주열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장소로 현재는 컨테이너 가건물로 허울만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김상집이 그 시대의 봉심정을 재현한 그림.


실제 5·18에 참여한 민주인사들은 대부분 이미 형성된 광주운동권에 속해있고, 이외에도 각지에서 농민운동·문화운동·선교운동 등으로 나뉘어 그 맥을 이어갔고 지금의 민주주의에 이바지 했다.

특히 이들은 70년대 사회격변의 시기 민중을 대표해 민주 활동을 펼친 인사들이 수없이 드나든 봉심정이 대표공간으로서 갖는 역사적 의의와 복원의 필요성을 토론했다.

또한 저항운동과 더불어 수많은 시인, 문학인이 거쳐간 봉심정이 인문학계 산실로서 갖는 가치에도 주목했다.

봉심정은 김남주, 김윤창, 임성래, 박몽구, 김경주, 이영진 등 시인·화가와 문학동인들이 수시로 방문하고 기거하면서 문학활동을 진행했던 장소로 인문학적 가치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장 복원과 함께 광주만의 민주정신을 담은 관광자원으로 연계해 기념관 설립과 역사 사료 수집 등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70년대 민주인사들의 고령화로 사료 수집에 제약이 있고, 감시가 삼엄하던 시절 증거자료를 남기지 않는 특성을 고려할때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보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광주 민주인사들의 세대별 활동상과 네트워크를 파악해 선양사업을 확대시키고 활성화 시켜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정길 “수많은 민주인사 품은 장소로 기억되길”

70년대는 해방 이후 경제개발계획 등에 의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농민, 도시노동자 등 ‘민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격변하는 시대였다.

사회적 성격에 의해 새로운 방향의 운동권이 형성, 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자리잡게 됐다.

광주운동권은 함성지사건을 시작으로 포문을 열었고, 민청학련 때는 대학생 뿐만 아니라 고교생들까지 조직화시켜 민주화운동이 시민사회에 뿌리내렸다.

봉심정을 찾은 민주인사들은 반독재나 사회정의로부터 출발해 여러가지 모순들을 파헤쳐가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지향해 나갔다. 지식인 뿐 아니라 민중들의 입장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봉심정은 그 둥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70년대부터 80년대 사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민주화운동을 펼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러 방면으로 지향된 사회실현은 봉심정이라는 공간에서 심화되고 학생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 선교운동 등 각 분야에 체계적으로 뻗어나갔다.


-이강 “절친인 김남주 상상력 자극시키는 장소”

김남주와 나는 전국의 첫 반유신 체제 운동인 함성지 사건을 주도했다.

사건을 주도한 계기는 전봉준 사적지를 방문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민중혁명이 안타까웠고, 민중들을 결속시키고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올바른 사회 정착을 위해서였다. 봉심정은 이런 논의가 끊임없이 이뤄진 곳이다.

비단 70년대 운동권 뿐 아니라 80년대까지 후배 세대와 이전 세대가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을 위한 역량을 축적했다.

또한, 봉심정은 절친인 김남주에게 시인으로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민주인사가 나이대, 성별을 불문하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세계 문학을 논의했다. 이들은 특정 논지에 집착하지 않고 대화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봉심정이 김남주의 시인 인생에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김남주 외에도 박몽구 등 시인과 수많은 문학인이 드나들었다. 인문학적 산실로써 이곳이 기억되길 바란다.


-이재의 “유일한 보안 유지 민주활동 공간”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70년대 봉심정의 민주인사들이 없었다면?’이라고 가정했을 때 광주가 과연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될 수 있었을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광주는 70년대부터 이뤄진 운동권 네트워크로 인해 저항정신이 뿌리에 깊숙히 새겨져 있는 상황이었고, 단순한 민중봉기가 아닌 축적된 정서적 공감에 의해 5·18민주화운동에서의 마지막 항거 등 강한 투지가 표출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80년대와 90년대 이후까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는 원동력이자 구심점으로 봉심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또한 광주에서 서슬퍼런 정권의 감시 속에서 유일하게 드러나지 않고 보안이 유지된 장소로서의 공간성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카프카나 녹두서점 등 대부분 장소가 노출돼 비밀 유지가 어려웠다. 민주인사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던 이유는 산골짜기에 위치해 비밀유지가 가능한, 말 그대로 ‘민주인사들의 사랑방’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상집 “옛모습 기억하는 사람 있을때 복원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봉심정의 주요 인사인 박세정, 윤강옥 등과 팀을 이뤄 활동했다. 민주활동가라면 누구나 담당 형사가 따라붙어 감시를 당했던 시절, 우리들은 은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봉심정에 자주 모였고 민주화에 대한 토론과 논의를 지속했다.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탓에 봉심정은 철저한 보안이 이뤄졌고 감시망을 피해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봉심정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많지 않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에 시대 정신을 담아 복원하고 그곳을 거쳐간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기록해야 한다. 무엇보다 70년대 민주활동가들의 고령화 문제를 고려해 역사자료 수집과 구술 등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갈망한 인사들은 봉심정 입구에서 마주하던 샘을 기억한다. 마르지 않아 ‘하늘샘’이라고 부르던 이곳은 현재 아무도 찾지 않아 ‘기억하지 못하는 장소’로 말라버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기억을 되살려 가치를 계승해야 한다.


-전용호 “전남대 서클들 후배양성·의식화 운동 뿌리”

전남대에 입학 후 사회과학 서클인 독서잔디와 탈춤반으로 활동하면서 들불야학 강학까지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4·19혁명 이후 전남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인 기류와 함께 흘러갔지만, 지속성을 가지고 조직화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부터다.

최초 서클인 김정길 등이 속한 전남대 서클 민족사회연구회(교양독서회)를 시작으로 루사 등 80년대까지 전남대학교 내에서 활발한 모임 활동이 지속됐고, 후배양성과 의식화를 통해 민주정신이 다양한 시민들에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봉심정은 광주에서 조직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번쯤은 찾아가는 곳이었다.

감시가 삼엄하던 시절 민주인사들은 외진 장소에 위치했던 이곳을 찾아 민주화운동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해 나갈 수 있었고 농민운동, 문화운동 등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그러기에 봉심정은 민주화운동의 근본이자 뿌리였다.

/정리=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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