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 아동의 문제는 속도 아닌 ‘방향’ / 이세연
2022. 02. 17(목) 19:31 가+가-

이세연 양지종합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

‘느린 학습자’는 지능검사(IQ) 결과가 평균(100점)보다 조금 낮은 71점-84점 사이의 사람을 말한다. IQ가 70점 이하면 지적장애, 85점이면 평균 범주에 속한다. 그 기준에 따르면 느린 학습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서 있다. 느린 학습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하며 그 중 ‘아동’이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계선 지능 아동 또는 학습 부진아 등으로 불리는 이들의 비율은 무려 12-14%에 이른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 학급에 2-3명은 ‘느린 학습 아동’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느린 학습 아동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 통계와 비율을 알려주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느린 학습 아동은 교육 복지의 경계선에 서 있다. 낮은 지능지수 때문에 교육, 학습, 관계 형성, 학교생활 등에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럼에도, 지적장애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지원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특수 교육 대상자가 아닌데도, 특수 교육에 배정되기도 한다. 특수 교육에 배정된 후에도 중증 장애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 느린 학습 아동은 일반 교육, 특수 교육 모두에서 소외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느린 학습 아동 대부분은 주의가 산만하고 감정 표현, 의사소통에 서투른 모습을 보이며, 상황 판단이나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학교나 또래 사이에서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또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어, 자존감이 낮고 소외감을 갖게되는 문제를 안게 된다.

느린 학습 아동을 둘러싼 문제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느린 학습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생애주기별 관점을 갖고, 장기적·지속적인 개입이 진행돼야 한다. 인지·학습적인 부분 외에도 의사소통 개선, 올바른 표현 능력 향상 등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교육 활동, 만남 등이 제한되면서 방치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유가 있는 가정의 경우 사교육과 사설 치료실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정의 경우에는 그저 집에서 방임되고 있다. 다행히 사회 여러 분야에서 느린 학습 아동을 위한 노력이 시행되고 있다. 2021년에는 서울특별시를 시작으로 광주광역시를 포함한 8개 지역에서 ‘느린 학습 아동’ 관련 조례가 제정됐다. 올해 1월에는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교육결손의 종합적 회복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마포구를 시작으로 은평구, 송파구, 구로구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이 개관되기도 했다. 사단법인 ‘피치마켓’에서는 수년 전부터 느린 학습자를 위해 쉬운 글로 구성된 책을 제작하고 있으며, 지역 민간 복지시설에서도 느린 학습 아동을 위한 강사, 프로그램 등을 연계하여 느린 학습 아동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느린 학습자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린’ 사람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배우고 익혀가는 속도가 평균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동들이 초기에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평균 지능 범주로 발전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속도와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는다면, 한 명의 사회 일원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다는 뜻이다. 몇 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정신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빨라진 시간의 흐름 만큼 사회 변화도 더 빨라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느린 학습 아동처럼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뒤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느린 학습 아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속도에 맞춰 함께 가야 한다. 공교육 안에서, 사회의 돌봄 안에서 느린 학습 아동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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