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미크론’ 변이 발생과 코로나19 확진자 확산세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가 이어지고 있다.

4천여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위중증 환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코로나19와 같은 ‘역병’이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잦았다. 코로나19 사망률이 0.05% 미만이지만 조선시대 전염병은 걸리면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했다.


- 세종, 격리소 ‘활인서’ 설치·‘매골승’ 양성-
‘조선왕조실록’에 전염병의 기록은 세종 때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함경도에 1년 동안 전염병이 창궐했고, 3천여 명이 숨진 기록이 있다. 전염병을 경험한 세종은 이 사건 후 성밖에 ‘활인서’라는 격리소를 만들어 접촉자 발생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정부지정 격리시설이 세종 때부터 시작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역병이 돌아 시체가 거리에 방치되자 세종은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매골승’을 양성했다.

전쟁과 기근으로 길에서 죽은 사람을 수습하는 사람을 ‘매골승’이라 불렀는데, 기원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승려인 매골승은 불교식 장례인 화장을 주관하고 묏자리도 잡아줬다. 고려 말 요승으로 알려진 신돈도 원래는 매골승이다. 매골승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활인서 소속의 관원이 됐고, 역병과 전쟁으로 죽은 시신을 수습했다.

향약집성방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약초로 구성된 처방을 기본으로 민간요법 등을 기술하고 있다. 그 처방 수는 1만여 가지가 넘는다

더 나아가 세종은 전문 의학자를 양성해 조선 산야(山野)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를 기록한 ‘향약집성방’을 집필하게 했다.

이 책의 도움으로 전염병에 효과 있는 약초를 직접 백성들이 쉽게 구할수 있게 됐다. 세종 이후 조선 500년 내내 조선의 왕들은 전염병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중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피해사례와 역병의 종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중종 21년, 1526년 4월, 전국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전라도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다.
“전라도 관찰사 유관(柳灌)이 치계(馳啓, 왕에게 올리는 보고)했다. 전라도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총계 560명입니다.”


중종 21년 5월21일.
“전라도에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모두 142명이었고, 함경도에는 3월에서 4월까지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모두 580명이었다.”


7월에 전염병이 사라진 것으로 ‘중종실록’에 기록돼 있는데, 3개월 동안 전라도에서 702명이 사망했고, 함경도에서는 한 달간 580명이 숨졌다. 이처럼 전염병이 창궐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길거리에 시체가 나뒹굴게 됐다. 그래서 매골승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던 중종은 통치 기간 내내 전라도와 함경도 지역의 전염병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중종 37년, 1544년 7월 1일.
“전라도 나주·영암·강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많이 죽다. 전라도에 전염병이 번져서 죽은 백성이, 나주(羅州)가 419명, 영암(靈巖)이 308명, 강진(康津)이 232명이었다.”

10년 후 1554년, 명종 9년 5월에도 전라도에 전염병이 돌아 1천350여 명이 숨졌다. 10년을 주기로 역병이 돌았던 조선시대에는 약초 이외에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한번 전염병이 돌면 전라도에서 평균적으로 1천여 명이 사망했다.

인조 21년, 1623년 12월25일, 전라도에 전염병이 크게 성했다

“전라도에 전염병이 크게 성해 사망자가 1만여 명이었다.”

인조 23년, 1625년 2월2일, 전라도 지리산·금정산·남해당에 여제를 설행하다

“전라도 지리산(智異山)·금성산(錦城山)·남해당(南海堂)에 향과 축문을 보내어 여제( 祭)를 설행했다. 전라도에 지난 겨울부터 전염병이 크게 번져 사망자가 계속 발생했으므로 온 도내에 청결한 곳이 없었다.”


- 병자호란때 ‘홍타이지’도 두려워했던 ‘호안 마마’-

등준시의 무과 합격자 18인의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등준시무과도상첩’(登俊試武科圖像帖)(1774)에 수록된 김상옥(金相玉·가운데)등의 초상화에 보이는 마맛자국은 조선시대 만연했던 두창의 위력을 짐작케 한다.

인조 때 천연두가 창궐해 전라도에서 1만 명이 숨졌다. 전라도 인구 43만여 명 가운데 1만 명이 숨진 것이다. 당시 항체가 없던 탓에 천연두에 걸리면 목숨을 내놔야 했다. 천연두의 공포는 조선 백성뿐 아니라, 청나라 태자 ‘홍타이지’에게도 두려운 존재였다.

인조 14년, 1616년 청나라가 남한산성을 포위할 무렵에도 천연두가 창궐했다. 천연두 항체가 없었던 청태자 홍타이지는 공포에 휩싸여 삼전도 굴욕만 보고 부랴부랴 조선을 떠나야 했다. 어찌 보면 ‘호안 마마(천연두)’가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조금이나마 줄여준 효과이기도 하다.

현종 때까지 홍역과 천연두가 유행했다. 지금은 주사 한 방이면 1주일 정도 고생하고 일어날 병이지만,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걸리면 며칠 사이에 숨을 거뒀다고 ‘현종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사람이 많이 죽었다. 홍역과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숙종 8년, 1682년 1월30일, 전염병으로 전라도에서 소 1천 5백여 마리가 죽다

“전라도에서 돌림병으로 죽은 소가 1천500여 마리[頭]였다.”


전염병은 사람뿐 아니라 소에게까지 번졌다. 당시 노비보다 비쌌던 소의 돌림병은 농경 생활이 주가 됐던 전라도 백성들에게 생계를 위협했다.

순조 21년, 1821년에는 콜레라가 유행했다. 당시 콜레라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많은 나라로 감염됐는데, 조정에서는 발생 경로나 원인을 밝힐 수 없어 ‘괴질’이라고 판단했다.


1821년(순조 21) 8월4일, 평안감사 김이교가 보고하다.

“구토하고 설사하는 병의 증상으로 인해 평양성 안에서만 사망한 이가 하루 사이에 300명이다. 7월 말일부터 평양성 안팎에 괴질이 유행하기 시작해서 사망자가 열흘 사이에 1천 명이 됐다.”


평양에서 콜레라가 유행한 후 10일 후 화성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로 확산했고, 다시 열흘 뒤에 충청도 산골까지 번졌다.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로 곧바로 퍼졌다. 1822년 1월에 제주도까지 확산됐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과 견줄 만큼 콜레라 감염은 보균자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처럼 조선시대 전염병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4인, 8인 등등 지금은 나름 방역수칙에 따라 일상모임을 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죽음과 맞바꾸는 위험한 거래였다. 하지만 집에서 굶어 죽는 것보다 집 밖으로 나가서 일해야만 했던 우리의 선조들의 아픔을 기억한다면, 코로나19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신광재 역사문화전문기자는 고려대에서 고고학과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