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에서]윤석열에게 광주란
2021. 11. 18(목) 19:18 가+가-

김종민 논설실장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으며 호남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광주의 아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윤 후보가 본선 레이스 첫 지방일정으로 지난 주 광주를 찾았지만 성난 민심은 변한 게 없다. 개 사과 사진 논란과 캠프 관계자의 호남 비하까지, 그의 사과는 부족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 당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등 광주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진실한 마음, 진심일까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수습 역시 매끄럽지 못했던 셈이다. 제1야당의 무게가 남달랐던 만큼 실망감이 컸다.

여태껏 광주는 용서하지 않고 있다. 윤 후보는 시민사회단체와 5·18단체, 정치권이 잘 포장된 기획 이벤트로 방문 자체를 그토록 결사 반대하고 나섰던 이유, 또 이후에 일방적 통과의례라며 직격하고 나선 것까지 잘 헤아려야 한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생활을 시작했던 그 올곧은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윤 후보가 대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심장 광주부터 포용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선거 공학적으로 광주, 호남은 전략적 승부처다. 어떤 예측도 어려운 초접전 구도에서 승패를 가르는 열쇠다. 더불어민주당은 안방에서 80-90%의 몰표를 얻어야 하고, 국민의힘은 불모지에서 10% 이상의 득표를 해야만 승산이 있다. 여당과 야당은 나라의 존망을 걸린 절체절명의 선거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호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

윤 후보의 기치는 대한민국의 정상화다. 그는 이를 위해서 국가 운영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듬어진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절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호남에는 또 응당의 책임을 져야 한다. 더 진정성을 가지고 지역의 미래 발전을 위한 공약을 내놔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를 꿰찰 요량이라면 기본적인 도덕성과 통치 역량이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 데뷔 4개월만이다. 아웃사이더의 도전, 서막이 올랐다. 정권재창출보다 정권교체론이 다소 우세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당초 예측했던 대로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투사를 뽑았다. 현 정권에 맞선 결기가 통했다.

검찰개혁의 적임으로 총장에 전격적으로 발탁됐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 끝에 물러난 인물 아니던가. 윤 후보는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고,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아픔이라며 경선 승리를 매우 두려워하고 뼈아파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의 싸움, 심판해달라고 호소한다.

내년 20대 대선, 윤 후보에 맞설 집권여당의 상대는 이재명 후보로 역시 국회의원 경험이 없다. 강한 리더십으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것도 닮았다. 거침없는 돌파, 추진력을 앞세운 파이터형 이미지로 창과 창, 창과 방패의 정면 승부다.

사상 초유의 ‘0선 대결’에서 윤 후보는 여의도 ‘정치교체’에 대한 부름에 답해야 한다. 거대 양당은 정권재창출과 교체론으로 역대급 사생결단 태세지만 정작 국민들은, 호남인도 그렇듯 불공정 기득권에 얽매인 기성정치에 단단히 뿔나 있다.

지금까지 처럼 막말 수준의 폭로와 비방은 표를 깎아먹는다. 진보와 보수, 낡고 진부한 진영 싸움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론조사 지지율에 끌려가도 끝장이다. 거품과도 같이 언제든 빠질 수 있는 착시일 수 있다. 부동산 선심성 공약의 남발, 주의해야 한다. 이래저래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이례적인 이번 선거다. 최대의 적은 후보 자신이다. 장점에 비해 약점을 줄여야 살아남는다.

때로 정치행위는 쇼에 가깝다. 엄밀하게 쇼라고 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적지 않다. 그러나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쇼라면 지극히 위험하다. 어설프다면 시도할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윤 후보는 쇼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한 번 믿어볼 일이다.

광주에서 인기 없는 ‘비호감’ 이다. 분노한 민심이 여간해선 누그러지지 않을 것 같다. 윤 후보는 사과가 진정으로 다가설 때까지 애써야 한다. 광주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두가 광주의 아들과 딸이라면 윤 후보도 광주의 아들이 맞다. 제 도리를 다해야 한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문득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첫 구절이 떠오른다.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가.

연탄의 무게는 3.65㎏으로 사람의 체온 36.5도와 같다고 한다.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시린 손 녹여 줄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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