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12사도 순례길’에서 관광의 미래를 찾다
이경수
편집국장
2021. 05. 10(월) 19:53 가+가-
코로나19로 지구촌의 발걸음이 멈춘 지 1년이 넘어간다. 그 사이 전 세계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지만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도 지뢰가 터지 듯 곳곳에서 확진자가 이어지고 있다. 모임은 언감생심이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했다. 여행을 삶의 활력소로 삼아온 필자도 유명 관광지 찾기는 목록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다. 대신 김밥 싸고 커피 내려서 단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하며 여행의 감을 유지하는 것이 휴일을 보내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놀이로 기운을 충전하는 필자에게 신안의 작은 섬, 기점·소악도의 ‘12사도의 길’은 신선한 선물이었다.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남도의 섬을 제법 안다는 사람들에게도 다소 생소할 기점·소악도를 더욱 사랑할 것 같다는 예감이 확 들어왔다.

이 곳은 정말 2년전까지 만 해도 일반인들이 가야 할 이유가 없는 섬이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고립된 공간이었을 뿐이다. 증도면 병풍리로 주소지가 돼 있는 기점·소악도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노두길로 연결된 5개의 작은 섬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썰물 땐 하나의 섬이 되고 하루 두 번 밀물 때엔 노두길이 물에 잠겨 각각 독립된 섬이 된다.

워낙 작은 섬들이라 별다른 볼거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섬만이 간직한 문화유산·유적도 보유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작은 논밭에서 쌀농사와 콩·고구마·마늘을 재배하거나 연안에서 김 양식과 소금 생산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배를 타면 천사대교 밑을 지나 40여분 후 대기점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러면 바로 눈앞에, 하얀 몸체에 코발트색 지붕을 얹은 작은 예배당이 반긴다. 첫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이다. 이 예배당이 그동안 별 볼 것 없었던 이 작은 섬으로 여행자와 순례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이제 12개의 예배당을 차례대로 찾을 것이다. 마을길을 따라 언덕이나 갯벌, 호수 등에 자리잡은 작은 예배당이 바로 ‘12사도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국내 작가 6명과 프랑스·스페인 출신 해외 작가 4명 등 예술인 10명이 참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이들 예술인들은 섬에 살면서 ‘생명평화의 집-요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등 각 사도의 이름을 따 두 평 남짓한 크기의 예배당을 세웠다. 탐방객들이 찾아오면서 이 길은 ‘12사도 순례길’로 자리잡았다.

이제 기점도와 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으로 명성을 굳혔다. 심지어 세계적인 명소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빗대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이 곳은 남도의 작은 섬에 자리했다고 해 ‘섬티아고’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 12㎞를 걸으며 예수의 12사도를 기리는 공간들이 있어서다.

여기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디어 하나로 새로운 관광자원을 만들어 지역사회를 확 바꿨다는 사실이다. 그 시발점은 전남도가 추진한 ‘가고 싶은 섬’ 사업이 계기였다. 전남도의 민선 6기 브랜드 시책인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은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여수 낭도와 고흥 연홍도를 비롯해 강진 가우도, 완도 소안도, 진도군 관매도, 신안군 반월·박지도 등 18개 섬이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돼 섬의 특성에 맞는 개발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이제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섬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어 고흥군 금산면의 작은 섬마을 연홍도는 폐교를 미술관으로 꾸며 ‘섬 in 섬 연홍미술관’을 개관하고 마을 안길은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하는 등 ‘미술’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특화시켜 사시사철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섬으로 재탄생했다.

이 곳 기점·소악도 역시 지난 2017년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으며 행정기관과 주민들의 지혜를 모아 느릿느릿, 싸목싸목 걷기 좋은 순례자의 섬으로 만들기로 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12사도를 모티브로 예술성을 갖춘 작은 예배당을 짓고 종교인· 비종교인 상관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들렀다 가는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 이 곳의 12개 작은 예배당은 어떤 종교적 색깔 없이 섬을 찾는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그곳에서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됐다.

섬 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묶여 낙후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신안의 작은 섬이 발상의 전환을 통한 의미 찾기로 새로운 생명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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