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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16)박 건
부마항쟁과 광주 5·18에서 세운 키치의 미학

2020. 11.24. 18:14:25

박건은 부산에서 1남1녀의 막내로 출생했다. 문학인을 꿈꾸던 젊은 지식인이었던 부친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돼 공산당 활동으로 한국동란 이후 반공법위반으로 수배됐다. 그리고 복역을 마치고 불편한 몸과 이력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가족과 떨어져 알콜 중독자로 짧은 생을 마쳤다. 모친은 직장취직과 가계를 열어 삶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의 유년기는 할머님과 외할머님 집을 오가며 외롭고 불안한 시절을 보내야 했었다.

1979년은 YH사건, 부마항쟁, 대통령 암살사건, 12·12 군사반란이 이어져 어둡고 무겁고 뜨거웠다. 그는 미술대학생 시절 ‘부마항쟁’에 단순가담자로 경찰에 체포 연행돼 ‘배후를 밝혀라’는 취조에 ‘배후가 있다면 박정희다’라는 답변으로 폭행에 기절하고, 찬물을 맞으면서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생 시절 미술재료 구입이 어려워 행위미술을 기획하고 무언극을 했다. 이후 그는 국가폭력과 군부독제에 맞서기 위해 민중미술운동의 선두에서 ‘시대정신’을 기획하고 출판문화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전국미술교과모임’을 결성하고 실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함께 했다. 동시에 공산품을 활용한 키치적 작업은 재치있는 창의력으로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면서 민중에게 잔잔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어두운 시대의 뒤틀린 가족사
박건, 그의 작품집(HEXA GON·한국현대미술선 044호, 2020, 11, 10) 첫 장에 부모님을 밝히고 있다.

‘굴곡진 시대를 피난민으로, 독립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가신 어머니(임민희 1933-1991), 이념 전쟁의 후유증으로 옥살이를 하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다 세상과 일찍 결별하신 아버지(박영기 1928-1970)…(중략)’

그가 어두운 가족사를 60여년을 넘겨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성장해가는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밝힌바와 같이 그의 부친은 진보적인 사상이었던 사회주의 이론탐독과 함께 공산당 활동으로 이어져 한국전쟁 이후 반공법 위반으로 4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 후 빨갱이의 신분으로, 세상을 비관한 방탕한 삶은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의 어머님은 부산 예식장에 취업해 축가 피아노 반주를 하는 한편 드레스를 만드는 기술을 습득, 웨딩드레스 가게를 열어 가정을 꾸려간다.

어둡고 무거웠던 시대 앞에 뒤틀린 박건의 유년시절은 친할머님(논산)과 외할머님(부산) 집을 오가면서 외롭고 불안한 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미술용품을 선물하며 늘 격려를 해줬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에 가입했으나 폭력에 뛰쳐나와 홀로 그림을 익힌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제도적이고 아카데믹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극반 입회를 했으나 운영방식에 실망하고 혼자 할 수 있는 팬터마임과 연출을 독학한다. 그는 몸으로 하는 행위의 특출한 감성은 무언극에서 행위미술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대학시절 경제적 독립을 위해 미술서적 외판과 교지편집위원을 맡아 학비조달과 출판미술에 흥미를 갖는다.

1977년 서구 형식미학의 미니멀리즘과 초현실주의 경향의 화풍이 유행되고 있을 무렵, 그 역시 유행에 휩쓸려 ‘샤갈’과 ‘달리’의 화집과 선배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 경향에 관심을 갖고 ‘꿈’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의 작품 ‘꿈-욕망의 지하실’(1977)은 아픈 가정사와 시대에 대한 울분과 분노는 허무주의적이고 자폐적 경향의 회화적 도피처를 찾아간다.

그가 유년시절부터 고통스럽게 쌓여져 왔던 아픈 가족사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가슴에 맺힌 아픔과 서러움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내보인다. 당시 서구의 그림에서 유행했던 이미지들로 계단과 창, 늘어진 형상이 반복되는 침울한 분위기가 다수다. 그의 작품은 대학 2학년답지 않게 새로운 예술양식에 도전해보는 예술가적 정신이 읽혀지며, 서툰 붓자욱과 형상력에 비해 화면구성 담력과 창의력이 느껴진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부터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불안함은 학교생활로 이어져 느끼는 사회적 한계는 불만과 울분으로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그 심리적 고통은 예술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 토양이 돼 성장시켜가게 된다.


▶부마와 5·18에서 피운 민중미학의 불꽃
‘바닷가 피에타’ mixed media (2018)

‘긁기80-2’ oil on canvas (1980)

박건은 1980년 ‘광주 5·18’이 발생하기 1개월 전, ‘강도전’(국제화랑·4.25-4.30)을 기획한다. 연극, 사진 등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부산의 젊은 예술인의 작품을 모아 기획전을 열며 작가이자 기획자로 출발을 했다. ‘강도전’은 시대를 읽어가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전시로 그 역시 당시 유행이었던 단색화를 출품했다. 그의 작품 ‘긁기80-4’(1980)는 단색 톤의 캔버스는 사람의 몸으로 물감이 굳기 전 손톱으로 긁어 시대의 아픔과 분노를 담았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회화양식에 우리의 시대상황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부마항쟁’에 참여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폭력으로 그의 몸에 남겨진 멍과 긁힌 상처를 캔버스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렇게 예술가의 DNA는 자신이 체험을 몸에 저장해 예술로 토해놓은 ‘경험으로의 예술’에서 작가 내면의 형상들을 한 차원 강하게 끌어올려 새로운 형상성으로 이끌어 낸다.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광주 5·18’은 그가 다니던 성당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는 아마도 독일의 사재단에서 보내온 사진을 포함한 자료를 본 것이다. 그는 당시가 ‘끔찍했고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는 ‘광주 5·18’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회화작품도 제작했지만 그보다는 호소력있는 전달력이 강한 행위미술을 선호했다. 그의 작품 ‘칠3’(1982)은 눈과 손에 붕대를 감고 가슴과 다리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 모래사장에 양손과 양발을 뒤로 묶힌채 기어 다닌다.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모두 총상을 입은 광주시민군의 모습이다. 그가 사진으로 봤던 광주시민군의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미술은 군부정권과 국가폭력의 실체를 강조시킨 강열함으로 ‘대구 강정’과 ‘부산 청년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받았다.

80년대 초반, 더욱 조여오는 탄압과 사회적 분위기에 한계를 느낀 그는 행위미술로는 활동의 한계와 작품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즉, 행위미술은 영상자료 밖에 남길 수가 없다는 한계를 체험한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위한 효과는 문화운동으로의 전환을 결정하고 ‘출판미술운동’을 통한 교육과 함께 ‘미니어처’로 작품 활동을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당시 ‘광주 5·18’을 주제로 ‘강5·18’(1983)을 제작한다. 기성 공산품을 활용한 조각 작품이다. 소년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핏빛 붉은 강은 흰 대지와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붉은 빛이 강조되고 있다. 작품에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상징하는 의미와 상호 어떠한 관계로 작용이 되는가? 미묘한 상황설정이기에 더욱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된다. 한국현대사에 큰 변곡점이 되었던 ‘광주 5월’을 그는 그렇게 녹여 담아냈다.
‘강5·18’ mixed media (1983)

박건은 우연치 않은 기회로 ‘제3미술관’(관훈동소재·서울)에서 ‘시대정신전’을 기획하고 이후 5년간 ‘시대정신전’(1983-1987)과 ‘시대정신지’(1984-1986)를 출판한다. 그리고 전국의 진보미술을 결집시켜 ‘한국민중미술’이라는 신 용어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전시와 함께 ‘시대정신지’는 ‘민중미술운동의 생명력’, ‘해방의 미학’, ‘우리시대의 성’뿐 아니라 현장의 실천을 기록하고 담론을 끌어내면서 민중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출판미술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 이로서 ‘시대정신지’는 진보적 문화예술인은 물론 언론과 학생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출판을 통한 미술운동의 토대는 물론 미학적 태도를 전국으로 확장시키는 큰 성과를 거뒀다.

박건은 선배의 추천으로 미술교사로 재직(1984-2008)한다. ‘민족미술협회(1985, 민미협)’에 이어 ‘민족예술인총연합’(1988, 민예총)창립과 더불어 ‘민족예술’기관지가 발간되면서 이후 미술교육운동으로 전환한다. 민미협미술교육분과 모임은 전국미술교사모임으로 확대시켜 미술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으로 ‘신나는 미술수업’ 연구에 집중한다. 동시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대회에 쓸 대형 걸개그림으로 ‘전교조’를 창립한다. 이렇게 그는 깨어있는 민중이자 시대를 증언하는 예술가였다. 그리고 민족의 주체자로 뜨거웠던 부마와 ‘광주 5·18’을 시작으로 80년대를 관통해내면서 창조적 활동은 역사의 현재와 미래를 예측하였다. 이렇게 그의 예술은 현실 속에서 절제된 진실을 강조했다.


▶키치적 시대풍자와 비판
박건은 유년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대학에서도 졸업 후에도 충분하게 그림을 그리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는 페인팅 작품을 양 껏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미술교사로 근무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붓을 놓고 있어 다시 붓을 잡을 자신이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의 감각적 창의력은 다른 재료와 양식을 선택한 것인가? 그래서 그는 1982년부터 공산품에 관심을 갖게 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재료를 구입하는데 부담이 적고 재료가 되는 공산품은 길거리에서, 장남감 가계에서 쉽게 취득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연극에서 연출자가 다양한 출연진과 소품을 연출하듯 그는 다양한 공산품들을 엮어내고 각색과 연출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시대를 비틀고 비양하는 풍자로 관람객에게 잔잔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무거운 경고로 우리 삶의 현실과 미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모두 안녕’ FRP figure (2020)

그의 작품은 ‘모두 안녕’(2020)으로 명제는 박원순(전 서울시장)의 유언이다. 소나무를 감은 뱀의 몸에 붉은 띠는 해골의 허리를 감고 있다. 그리고 땅에는 꽃과 뱀, 해골, 먹다 남은 사과가 있다. 소나무, 뱀, 해골, 동물해골, 꽃 등 모두가 공산품들이다. 연출된 공산품들의 관계설정은 우리의 공포감과 함께 키치적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소나무와 땅에 설정된 뱀은 교활성과 사악성을 강조하고 뱀에 묶여진 붉은 줄은 해골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이렇게 그는 박원순의 죽음을 연출했다. 마치 연극무대를 연출하듯 극적인 시점을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다종매체를 종합한 작품으로 사실상 미학적 관점을 흐리고 감각적이고 창의적 아이디어는 흥미롭게 반짝인다. 이렇게 그는 관념이나 형식이 그의 예술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삶 속에 예술을 즐기고 있기에 공산품 가게는 그의 놀이터이다.

박건의 예술은 큰 성과로 현대사회 트렌드의 접지를 찾아 민중미학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했기에 40여년의 ‘한국민중미술사’에 소중함이 강조된다. 현재까지 보여준 그의 예술은 경계와 개념을 뛰어넘는 감각적인 창의성을 증명해줬다. 그러한 그에게 조심스런 당부를 한다면 페인팅을 권해본다. 페인팅은 필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진정성 있는 창의력과 성실성으로 필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보다 확장된 민중미학의 바다로 자유롭게 항해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건(1957) 부산 생
▶동아대 미술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졸업
▶개인전 9회(부산, 대구, 서울, 광주, 대전)
▶초대전: 2020 핵몽4-야만의 꿈(예술지구_p·부산), Maytoday, 광주비엔날레 특별전(무각사로터스갤러리·광주), ‘두 개의 깃발’전(갤러리생각상자·광주), 새만금문화예술제(해창개벌·새만금), 2019 장난감의 반란(청주시립미술관), 여순 평화예술제-손가락 총(순천대박물관), 경기아트프로젝트‘시점 시점’(경기도미술관), 2018 그들의 오늘을 말하다.(은암미술관·광주)
▶저서 예술은 시대의 아픔 시대의 초상이다 (2017. 나비의 활주로)
▶수상 정의 화평 국제미술전 입상(1995. 중국장춘미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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