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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댁 수필 조자영

2020. 11.23. 18:40:01

달빛이 환하게 내려앉은 밤이었다.

술떡 담긴 광주리를 안고 고샅을 나섰다. 받아오라는 거면 몰라도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엔 늘 콧노래가 나곤 했었는데, 도무지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바로 위 그 집이 천 리라도 되는 양 멀었다.

그녀의 집은 외딴섬처럼 늘 문이 닫혀 있었다. 더러는 오가다 마주쳤지만, 매번 얼음장 같던 그녀의 표정이 두려워 인사는커녕 달아나기 바빴었다. 대낮같이 번하던 달빛이 그 집 앞에 이르자 깜깜해지는 듯했다.

여느 때처럼 대문은 깊게 잠겨 있었다. 고이 흔들어 보았지만, 기척이 없었다. 목까지 차오른 겁을 누르며 한숨을 두어 번 몰아쉰 뒤 냅다 외쳤다.

“월봉댁, 월봉댁….”

몇 차례 부름에도 인기척이 없자 돌아서려던 때였다.

“월봉할머니라고 해야제. 너까정 나를 그리 부르믄 쓴다냐? 그나저나 왔응께 들어 오그라.”

엄마가 늘 부르던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화가 난 걸까. 문을 여는 그녀의 낯빛이 다른 날보다 열 배는 더 싸늘했다. 광주리를 내려놓고 들입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부러 술떡을 높이 치켜들고 문 안에 한발을 들여놓았다.

놀랍게도, 마당은 꽃 천지였다. 언틀먼틀 납작 돌이 박힌 마당 가에 다알리아, 맨드라미, 과꽃이 온통 달빛에 젖어 문밖과는 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내 경계심도 조금 누그러졌다.

“오메, 식구도 많음서 느그나 묵제…. 가만 있어 보자.”

떡 한쪽을 뚝 떼어 오물거리며 부엌으로 가더니 둥그렇고 매끈한, 찐 고구마 두 개를 들고나왔다. 한결 순해진 얼굴이었다.

“싸 줄 것은 없응게 여그서 너나 묵고 가 잉.”

밤이 이슥한데도 식전이었던지 한참을 허겁지겁 떡만 먹었다. 내 존재는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무섭기는커녕 달님처럼 소담하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두 덩어리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는 겸연쩍게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곱디고운 자색 고구마를 나도 단숨에 먹어 치웠다. 힐긋 보니 하얀 월봉댁의 얼굴이 어느새 고구마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 떡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불콰해지곤 했으니 그 이유쯤은 알 것 같았다.

“후제 나 보거든, 월봉할머니라고 불러라 잉.”

다정하게 늘어진 그녀의 말에 답을 하려던 순간, 고구마가 가슴에 얹히며 물큰 숨이 막혔다. 그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건네고는 등을 두어 번 쓸어주더니 저만치 앉아서 나를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열없이 고개만 숙일 뿐 내 목구멍에선 끝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린 멀찍이 떨어져서 애먼 달만 쳐다봤다.

“넌 애기라 잘 모르것지만, 사람마다 다 지 속사정이 있는 거이다. 인자 가그라. 나는 그만 자야것다.”

한참 후, 비틀대며 일어나 마당 가로 가더니 보름달만한 박 하나를 뚝 따서 광주리에 담아주며 그녀가 말했다.

‘예, 월봉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말하고 싶었지만, 엉거주춤 속으로만 인사를 되뇌는 사이 철커덕 뒤에서 빗장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현듯 눈앞이 아득했다. 무서리가 내릴 것처럼 달빛마저 서늘했다. 문밖에 한참을 동그마니 섰다가, 광주리 속의 달을 이리저리 굴리며 집으로 왔다.

마당에 닿자마자 박을 내려놓고 까치발을 디뎌 월봉댁네 툇마루를 보았다. 잔다고 하던 그녀는 그대로 거기 앉아있었다. 아까 먹은 고구마 탓인지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소금쟁이처럼 내내 마당을 감돌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다시 올려다보았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조자영 약력>

▲대한문학 등단

▲광주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시들지 마라 피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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