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 의원의 최고위원 도전
김진수
본사 서울취재본부장
2020. 08. 18(화) 19:16 가+가-
집중호우로 연기됐던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전남도당 대의원대회가 19일 열린다. 열흘 뒤로 다가온 ‘8·29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광주·전남 출신인 이낙연 후보와 양향자 후보가 각각 당 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에 나서고 있어 최종 결과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당대표 경선의 경우 경쟁 상대인 김부겸 후보나 박주민 후보가 열심히 추격하고는 있으나 어차피 이낙연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와 달리 8명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최고위원 경선의 경우 여성인 양향자 후보가 자력으로 5위 안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초선 국회의원인 양 후보는 지난 7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최고위원 후보 예비경선에서 노웅래(4선), 이원욱(3선), 김종민·소병훈·신동근·한병도 의원(재선), 원외 인사인 염태영 수원시장과 함께 컷오프를 통과했다.

당초 양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 재선의 이재정 의원과 경쟁하게 돼 예비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이를 뒤집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재정 의원의 탈락으로 유일한 여성 후보자가 된 양 의원은 ‘5인의 선출 최고위원 중 한 명 이상을 반드시 여성으로 둬야한다’는 민주당 당규에 따라 설혹 6-8등을 하더라도 득표율 5위 남성 후보자 대신 그가 최고위원으로 선출된다. 사실상 이미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규에 안주해 편하게 최고위원이 되는 방식 대신 자력 당선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양 후보는 “자력으로 최고위원이 되지 못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인 여성들에 할 말이 없다”면서 “우리당이 여성 최고위원 30%도 거절한 상황에서 유일 여성 후보인 저까지 5위 안에 들지 못하면 민주당이 여성을 위한 정당이라 말할 수 있냐”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양향자의 도전 정신은 ‘상고 출신 삼성전자 임원’ 신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삼성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 평사원으로 출발해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이사라는 연구임원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입사 초기 주산, 부기, 타자 밖에 할 줄 몰랐던 그가 사내 강의를 통해 3개월 만에 일본어 자격증을 딴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삼성전자 입사 후 5년 뒤 삼성전자 사원과 결혼했는데, 당시 고졸 여사원의 경우 결혼을 하면 퇴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회사를 그만두기는커녕 출산 전날까지 일을 한 억척이었다.

몇 년 뒤 아기 엄마가 된 양향자는 직급 승진심사에서 필기시험은 붙었으나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게 된다.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여자가 아이를 낳았으면 당연히 퇴사하는 것’이란 통념이 그의 승진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

1년 뒤 또다시 필기시험에 붙고 이어진 면접시험에서 그는 면접관들에게 “전 오늘 여러분께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만약 아이를 낳고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승진 시험에서 누락시키는 회사라면 제가 회사를 떠나겠습니다”고 일갈하고 면접장을 나왔다고 한다. 면접관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고 나왔으니 진짜 회사를 떠나야 하나보다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승진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양향자는 삼성전자 연구보조원에서 메모리사업부 SRAM설계팀 책임연구원, DRAM설계팀 수석연구원, 플래시설계팀 부장, 플래시개발팀 상무를 지낸 뒤 2016년 1월12일 더불어민주당의 외부 인사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양향자는 “학벌의 유리천장, 여성의 유리천장,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쳐 노력했지만, 청년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직장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 단절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게 있다”고 말했다.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에서 태어난 보통의 전라도 여성 양향자(53)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의 여정은 ‘유리천장’ 깨기의 연속이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근대민주정치의 발전에 따라, 선거권·피선거권의 범위가 확대돼 왔으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고 또 가정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라는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피선거권은커녕 선거권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여성이 처음으로 선거권을 갖게 된 국가는 1893년 뉴질랜드였다. 영국에서는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1919년에는 네덜란드, 1920년에는 미국 여성들이 긴 싸움 끝에 선거권을 쟁취했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긴 세월 여성들의 강력한 투쟁과 선구자들의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해방 이후 실시된 첫 선거부터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치열한 노력과 투쟁의 과정 없이 얻게 된 참정권이어서인지 초기에는, 이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지 못하고(남성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고무신, 막걸리에 이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여성을 배려해 주어진 최고위원이 아니라, 남성과 똑같은 경쟁을 거쳐 당당히 최고위원이 되려는 양향자 후보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꼭 승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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