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지역
사람들
오피니언
TV
서서평, 허철선 선교사 추모예배를 드리며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국제학박사

2019. 06.27. 19:08:49

엊그제, 26일은 아주 뜻 깊은 날이었다. 서서평선교사(1880-1934) 85주기, 허철선 선교사 (1936-2017) 2주기 되는 날이었다. 평생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내한 1백년 만에 서서평선교사 오월어머니상을 받고 돌아가신 뒤에야 알려진 허철선 선교사는 두 분다 한국에서 20여년을 사셨다. 두 분 모두 한국에 선한영향력을 발한 사람들이다.

서서평은 1880년 독일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남장로교 간호선교사로 1912년 한국에 도착해 제중병원에 근무했다.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발이 커서 남자고무신을 신고 다닌 독신간호사였다. 결핵환자와 나병환자와 빈민을 돌보았고 이일학교와 부인조력회 등을 통해 여성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불우여성들을 위해 숙식, 교육, 진로까지 책임지는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그야말로 한국여성운동의 선구자다. 13명의 불우한 소녀를 자신의 딸로 입양했고 병원에서 분만하다 산모(남편은 나병환자)가 사망해 고아가된 요셉을 친아들로 양육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는 좌우명을 삶으로 증명했다. 1934년 6월 서서평은 광주에서 만성 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숨을 거뒀다. 그녀가 남긴 건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뿐이었다.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 됐다. 그 당시 동아일보 최원순 광주지국장은 ‘자선과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양 서거’라는 제목과 ‘재생한 예수’를 부제로 그녀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조선에 머물렀던 22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줬던 삶이었다. 그가 한국에 온 지 100년 되던 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서평을 존경하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방인이고 선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광주의 어머니였다. 서서평선교사의 삶은 결코 성공이 아닌 섬김의 이었다.

허철선 역시 기독병원 원목으로 호남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강의하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차별한 공격으로 기독병원의 환자들이 현관까지 넘쳐날 때 그 참담한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 세계에 알리는 공헌을 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사택에 암실을 만들어 사진을 인화했고 시민들과 외국기자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 2017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하고 광주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그 시신의 일부가 양림 선교묘원에 있다. 지난해 부인 마르다가 5·18국립묘지에서 남편에게 드리는 글 편지를 써서 낭독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컥하게 했다.

더 높아지려하고 더 움켜지려하며 더 빼앗으려는 세상에 이웃이 겪는 아픔, 이 세상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여 한알의 밀알이 돼 살아간 서서평, 허철선 두 분의 고귀한 사랑과 섬김 앞에 그 걸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지난 26일 서서평 허철선 선교사 추모예배를 드렸다.

서서평 선교사와 허철선 선교사가 광주에서 행했던 사랑은 오늘날 다시 살아나 광주의 빛이 되고 있다. 두 분 선교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빛고을을 꿈꾸게 할 것이다.

필자 역시 그들의 삶을 본받고자 한다. 양림 선교묘원을 오르내리며 고아(청소년), 과부(여성), 나그네(고려인, 외국인근로자, 이주민 등)로 지칭된 소외된 자,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항상 함께 할 것을 다짐해본다.

광주매일 TV

실시간 HOT 뉴스

가장 많이본 뉴스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