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현안을 비롯해 징용피해자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기에 평생을 조선인 징용피해와 중국인 노동자 피해의 진실규명에 천착한 일본의 작가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1905-2004)를 고찰해보는 것은 여러모로 의의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마침 마쓰다 도키코가 주목한 이 하나오카 지역 ‘아키타(秋田)현 오다테(大館)시’에서의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중국인 피해사건, 즉 하나오카 사건과 관련한 전시회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서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전시’의 일환으로 개최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 말 조선인과 중국인의 피해에 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하나오카 사건을 마쓰다 도키코가 어떻게 보았는지 그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98세 때 잡지에 게재된 마쓰다 도키코.

조선인 징용자에게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제국주의는 군수물자 조달과 노동력보충을 위해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을 일본의 광산과 노동현장에 강제로 동원했다. 일본의 동북지역 아키타현 하나오카 광산에서도 수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기아와 중노동에 시달리며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동, 아연 등을 캐는 일에 내몰리고 있었다.

마쓰다 도키코는 이국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장에서 강제노역을 강요당하다가 그렇게 무참히 희생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하나오카 사건이 일본의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한 것은 1940년대말. 마쓰다 도키코는 ‘하나오카 광산의 비극-중국인 강제연행의 기록’이라는 글에서 하나오카 사건을 알게 된 시기를 ‘1948년인가 49년’이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 자신이 아키타현 광산출신이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신문에서 전쟁 중에 일본에 강제 연행돼 하나오카 광산에 투입된 중국인포로가 패전 직전에 폭동을 일으켰고 수백명이 학살당했으며 그 유골이 지금도 하나오카의 땅에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지금부터라면 너무 늦었다는 자책이 없지도 않지만 이를 철저히 추구할 의무를 느낌과 동시에 ‘분명히 그 이전에 일본인이나 조선인노동자도 전시상태였기 때문에 노동 강화로 희생되었지 않았을까’, 광산지대에서는 평화로울 때도 부상자나 사망자가 끊임없이 발생했으므로 그러한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카무라 신타로(中村新太郞) 편집, ‘다큐멘타리 쇼와50년사 4권’, 汐文社, 1975년)

‘하나오카 이야기’ 재판본 표지.

자신이 자란 환경과 배경을 공유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에 마쓰다 도키코의 이국노동자에 대한 동정과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중국인포로의 대량학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인노동자는 물론, ‘조선인노동자도 희생되었지 않았을까’하고 의문을 품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다.

그것은 ‘어째서 광산노동자는 이처럼 빈곤의 악순환과 끊임없는 노역을 감내해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노동이란 말인가’라는 마쓰다 도키코의 물음의 대상이 신분을 초월해 당시 일본 내지까지 끌려온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광산의 딸로 성장하며 광산노동자들의 일상을 주시해온 그녀에게는 국적이나 계층이 암시하는 고정적 관념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들을 학대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이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와 같은 저항의식은 국민국가 형성과정과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성찰을 내포하고 있기에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조선인 징용자들과 중국인포로들이 하나오카 광산까지 끌려와야 했으며, 무엇 때문에 일본기업과 악랄한 자본계급은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발탈하고 폭력과 린치를 일삼았는가?’ 마쓰다 도키코는 일본의 제국적 팽창주의 전쟁의 폐해가 부른 이러한 비극을 한시도 잊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마쓰다 도키코가 하나오카 사건을 ‘철저히 추구할 의무를 느낀’ 근거 또한 여기에 있다.

하정웅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나나쓰다테 사건 전후 ‘투쟁하는 조선인들’을 묘사한 판화. ‘조선사람들의 싸우는 모습’(위), ‘하나오카를 잊지마라’

하나오카 사건을 규명해야 한다는 마쓰다 도키코의 의무감은 문필활동과 직접적인 조사를 통해 구체화된다. 르포적 소설 『땅밑의 사람들』과 「뼈」, 르포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유골을 보내며」, 그리고 보고문 ‘하나오카 광산을 찾아서’ 등을 통해 하나오카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그 사건의 배경과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철저히 파헤친다.



현지 탐방 조사로 진실을 접하다

마쓰다 도키코가 처음으로 하나오카 사건 현지탐방 조사에 나선 것은 1950년 가을이었다. 전국금속광산노동조합 제14회 임시대회 방청 이후의 일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마쓰다 도키코는 “어째서 내 마음에 그 일이 푹 꽂혔던 것일까? 그것은 내가 아키타현 아라카와(荒川) 광산에서 태어났으며 그게 미쓰비시의 광산이었는데, 어릴 적 광산에서 광부가 얼마나 지독한 생활을 했는지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하나오카와 나’, ‘하나오카 사건 40주년 기념집회의 기록’, 1985년 6월)고 더듬은 적이 있다.

현지탐방 조사에 나서 그녀가 헬멧을 쓰고 갱내에 들어선 심경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의 체험과 기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순간이었을 것이다. 광산사무소에서 타이피스트로 근무하면서 노동자들의 육체적 고통과 비참한 일상을 목격한 마쓰다 도키코에게 갱내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하나오카 광산 현지탐방에 앞서서 사건을 세밀히 검증하는 마쓰타 도키코의 진지한 태도이다. 바로 그 전국금속광산노동조합의 임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하나오카 지역에서 온 대표 두 사람에게 사건 전모를 확인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즉 “중국인포로의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일본인이나 조선인노동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요? 노동 강화로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부상을 당했거나 목숨을 잃은 사고 말이에요”라고 질문해 “역시 일어났죠. 중국인포로가 하나오카에 오기 2개월 전에 나나쓰다테(七ツ館)라는 갱내에서 일본인 11명과 조선인 11명이 죽임을 당했어요”(‘하나오카와 나’)라는 답변을 듣는 것이다.

김정훈 <일본 간세이가쿠인대 문학박사, 주오대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전남과학대 교수>

마쓰다 도키코는 하나오카 사건을 접해 중국인뿐만 아니라 조선인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예측했는데, 그 예측이 적중한 것이다. 마쓰다 도키코는 대표 두 사람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나나쓰다테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와 배경을 캐물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