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디시인사이드(dcinside, 약칭 디시)란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다. 하루 순 방문자 수 350만 명, 일일 페이지뷰 7천만 회에 달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알려져 있다. 디시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의 성지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은어들이나, 합성소재들, 유머 자료 등은 대부분 디시에서 파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시에서 운영하는 몇 개의 갤러리 중 야구 갤러리(약칭 야갤)는 ‘홍어’, ‘통구이’ 등 극한의 지역 혐오와 적대감을 담은 포스팅이 난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갤에서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기아 타이거즈 팬들을 ‘홍어’라고 부르고, 기아 타이거즈 팬들은 삼성 라이온즈 팬들을 ‘통구이’라고 호칭한다. 여기서 ‘홍어’란 전라도 사람들을, ‘통구이’란 대구 지하철 화재로 사망한 희생자들을 의미한다. 양 지역 야구팬들은 지면에 옮겨 놓기도 민망한 악질적인 표현을 동원하며 상대방 헐뜯기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런 디시 야갤에 최근 들어 홍어와 통구이라는 비하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것도 법적 처벌이나 협박, 강요가 아니라 한 삼성 라이온즈 팬의 용기 있는 제안과 설득에 양측 팬들이 적극적으로 화답한 결과라는 전언이다.


‘디시 야갤’에 영호남 비하어 사라져

이들은 대신 서로를 ‘수박’과 ‘능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수박은 무등산 수박, 능금은 대구 사과 등 지역 특산물을 비유한 것이다. ‘홍어’, ‘통구이’로 지칭할 때와 달리 ‘수박’, ‘능금’을 쓰면서부터 양 지역에 대한 잔인하고 악질적인 악플도 당연히 줄었다.

디시 야갤의 변화는 ‘상식 있는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던진다. 여기서 ‘상식 있는 국민’이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차별 구조와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해본 사람들을 의미한다.

지역차별과 불평등과 같은 ‘비상식’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부의 갈등은 증폭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이 엄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노력은 필수적이다.

사실,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이 해소되는 것은 영남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특정 지역에 대한 불평등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국가의 지속발전은 불가능하다. 지속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산업화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영남패권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평등 개선은 공정한 인사에서 시작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차별과 불평등의 개선은 공정한 공직 인사와 자원 배분에서 시작된다. 어떤 정부가 됐건 인사탕평 등을 통한 사회통합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인사탕평을 통한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거듭해왔다. 그는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공직 인사에서의 영남 편중 현상을 지적하는 호남권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검토해서, 필요하다면 개선해 나가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발언은 전국으로 TV를 통해 생중계됐기 때문에 무언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그러한 국민적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당장 어제(14일) 있었던 軍 대장급 인사에서 정부는 합참의장에 3사 출신인 이순진 대장을 내정하는 등 7명의 대장 인사를 단행했지만 호남 출신은 단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 의원에 따르면 강신명 경찰청장 취임 이후 올해 경찰 경무관 승진자 중 영남 출신이 호남 출신의 4배에 달했다.

뿐인가.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12명 중 6명(50%), 국무위원 20명 중에 7명(35%)이 영남 출신이다. 호남은 단 2명(10%)이다. 더욱이 감사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5대 권력기관장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국민대통합’ 노력 미흡

장관·차관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 41명(23%)이었던 것이 이명박 정부 24명(16%), 박근혜 정부 15명(15%) 등으로 줄었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지역편중 역시 심각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난 2013년부터 2014년 9월까지 호남권의 SOC예산은 4천억원에 불과하지만 영남권은 6배가 넘는 2조6천억원으로 나타났다.

공직인사와 예산 배분에서 지역차별과 불평등이 여전하다는 이러한 객관적 사실은 박근혜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인사탕평, 국민대통합 등과 관련된 발언이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디시 야갤’ 보다 못하다는 지적은 옳은 말이다. /jski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