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충청 그리고 고속철도
김진수
서울취재본부장
서울취재본부장
- 재생 준비중
2015. 03. 31(화) 20:29 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4월이 왔다. 꽃바람을 기다려온 게 아니다. 광주, 전남·북의 350만 시·도민들과 함께 필자가 기다려온 것은 바로 호남고속철도다. 2004년 4월 1일 경부고속철도 1단계(서울~대구) 개통 이후 무려 10년이다. 여전히 요금문제와 소요시간 단축 문제 등이 똑 부러지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호남KTX가 드디어 오늘 개통식을 갖는다.
그동안 서울과 광주를 잇는 호남고속철도는 있기는 있으되, 진짜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만 고속철도이고 대전부터 광주까지는 그냥 보통 철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반쪽 고속철도’였다. 그러던 호남고속철도가 이제는 서울부터 광주까지 명실상부한 호남고속철도로 거듭나게 됐다. 호남고속철도의 서울 용산~광주 송정 구간의 평균시간은 107분(1시간 47분)이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는데 이제 두 시간 이하면 가능한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고속철도는 한 지역과 다른 지역 간의 지리적 거리를 더욱 빠르고 가깝게 연결시켜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까지 가깝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호남고속철도는 수도권 사람과 전라도 사람 뿐 아니라 고속철도 노선을 나눠 갖고 있는 충청인과 전라인 간의 마음속 거리를 보다 좁히는 데에도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호남고속철도 개통을 코앞에 두고 벌어졌던 서대전역 경유 논란은 두고두고 아쉽다. 왜냐하면 지역과 지역을 가깝게 해주는 고속철도가 거꾸로 두 지역 간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했던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실, 서대전역 경유 논란은 없어도 될 일이었다. 첫 개통부터 속도에 문제가 생기는 ‘서대전역 경유’ 방안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측의 실수였다. 경부고속철도에 비해 10년 늦어진 현실이 만들어낸 호남의 정서를 조금만 고려했다면 처음부터 서대전역 경유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당초 안대로 진행하다가 적자가 누적된다든지, 아니면 다른 경영상의 이유가 발생할 경우 서대전역 경유 노선을 추가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남KTX는 서대전역 경유 논란이 불거지면서 호남과 충청의 지역정서가 서로 격돌하는 모양새로 전개됐다. 그 결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던 충청 출신 이완구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와 맞물려 “호남이 사사건건 충청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왜곡된 정서가 충청권에서 확산될 조짐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0년 대구대학교 사회조사연구소에서 발간한 ‘사회연구’란 학술지에 ‘지역 간 거리감을 통해서 본 지역주의의 실상과 문제점’(최준영, 김순흥)이란 논문이 실렸다. 이 글에 따르면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세간의 추측과 달리 경상도가 아니라 충청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20세 이상 60세 미만의 성인남녀 1천371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당시 조사에서 충청 지역에서만 전라도 사람을 친구 삼겠다는 응답이 타 지역에 비해 10% 포인트 정도 낮게 나왔다. 친구삼지 않겠다는 부정적 응답도 경상도를 포함한 타 지역은 모두 10% 미만인데 충청에서만 10%를 상회했다.
또한 전라도 사람에게 세를 주지 않겠다는 응답은 전국 평균 11.4%이었으나, 강원(21.2%), 충남(19.5%), 충북(18.8%), 대전(17.2%) 등지에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자녀가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비율 역시 대전/충청/강원 지역이 21%로 가장 높고, 부산/경남 15%, 서울/경기 15%, 대구/경북 10%의 순이었다.
물론 5년 전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호남고속철도의 전체 노선을 양분하고 있는 호남과 충청의 미래를 위해 호남KTX가 얼마나 소중하고 지혜롭게 활용돼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 광주·전남의 광역·기초자치단체들은 호남고속철도가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느라 바쁠 것이다. 당연하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호남고속철도 정식 개통을 전후해 뭔가 서먹서먹해진 충청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속철도는 현재 세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미래 세대의 화합에 기여하는 도구로 기능할 때 그 존재이유가 더욱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kjdaily.com
그동안 서울과 광주를 잇는 호남고속철도는 있기는 있으되, 진짜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만 고속철도이고 대전부터 광주까지는 그냥 보통 철도였기 때문이다.
고속철도는 한 지역과 다른 지역 간의 지리적 거리를 더욱 빠르고 가깝게 연결시켜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거리까지 가깝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어떤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호남고속철도는 수도권 사람과 전라도 사람 뿐 아니라 고속철도 노선을 나눠 갖고 있는 충청인과 전라인 간의 마음속 거리를 보다 좁히는 데에도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호남고속철도 개통을 코앞에 두고 벌어졌던 서대전역 경유 논란은 두고두고 아쉽다. 왜냐하면 지역과 지역을 가깝게 해주는 고속철도가 거꾸로 두 지역 간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했던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실, 서대전역 경유 논란은 없어도 될 일이었다. 첫 개통부터 속도에 문제가 생기는 ‘서대전역 경유’ 방안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누가 봐도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측의 실수였다. 경부고속철도에 비해 10년 늦어진 현실이 만들어낸 호남의 정서를 조금만 고려했다면 처음부터 서대전역 경유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당초 안대로 진행하다가 적자가 누적된다든지, 아니면 다른 경영상의 이유가 발생할 경우 서대전역 경유 노선을 추가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남KTX는 서대전역 경유 논란이 불거지면서 호남과 충청의 지역정서가 서로 격돌하는 모양새로 전개됐다. 그 결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던 충청 출신 이완구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와 맞물려 “호남이 사사건건 충청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왜곡된 정서가 충청권에서 확산될 조짐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0년 대구대학교 사회조사연구소에서 발간한 ‘사회연구’란 학술지에 ‘지역 간 거리감을 통해서 본 지역주의의 실상과 문제점’(최준영, 김순흥)이란 논문이 실렸다. 이 글에 따르면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세간의 추측과 달리 경상도가 아니라 충청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20세 이상 60세 미만의 성인남녀 1천371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당시 조사에서 충청 지역에서만 전라도 사람을 친구 삼겠다는 응답이 타 지역에 비해 10% 포인트 정도 낮게 나왔다. 친구삼지 않겠다는 부정적 응답도 경상도를 포함한 타 지역은 모두 10% 미만인데 충청에서만 10%를 상회했다.
또한 전라도 사람에게 세를 주지 않겠다는 응답은 전국 평균 11.4%이었으나, 강원(21.2%), 충남(19.5%), 충북(18.8%), 대전(17.2%) 등지에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자녀가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비율 역시 대전/충청/강원 지역이 21%로 가장 높고, 부산/경남 15%, 서울/경기 15%, 대구/경북 10%의 순이었다.
물론 5년 전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호남고속철도의 전체 노선을 양분하고 있는 호남과 충청의 미래를 위해 호남KTX가 얼마나 소중하고 지혜롭게 활용돼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 광주·전남의 광역·기초자치단체들은 호남고속철도가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느라 바쁠 것이다. 당연하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호남고속철도 정식 개통을 전후해 뭔가 서먹서먹해진 충청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속철도는 현재 세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미래 세대의 화합에 기여하는 도구로 기능할 때 그 존재이유가 더욱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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