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2년부터 대학 등록금을 동결해 왔다.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은 정부가 국가장학금 일부를 지급해 필요한 비용을 보전해 줬다. 그러나 등록금을 동결하지 않은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은 물론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줬다. 이 때문에 대학은 인건비와 물가상승 등으로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했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요구 때문이다.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고등교육을 받게 하자는 주장에 국민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이 때문에 여야 모두 선거 때마다 이 제도의 시행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대학들도 국민 정서와 정치권의 입장을 고려해 등록금 인상을 자제해 왔다.

정부의 등록금 동결 조치가 10년 넘게 유지됐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기조에 균열이 생겼다. 작년에 이어 올해 일부 대학이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했다. 몇몇 대학은 인상 가능한 최고의 수치인 5.6%까지 인상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 등록금은 직전 3개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인상할 수 있다.

최근 대학과 총장들의 의견수렴 결과를 보면, 4년제 대학 열 군데 중에 7곳은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때가 되면 등록금을 올려 대학재정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실제로 대학이 법정 최고액까지 등록금을 올리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해 주는 국가장학금 지원액보다 수입이 많다. 그래서 일부 대학은 등록금을 인상해 들어온 재원으로 국가장학금을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대학이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학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경상비는 올라가는데, 수입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은 매년 예산편성에서 인건비와 경상비의 인상 비율만큼 인프라 투자비용을 삭감하고,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있다. 대학의 본래 기능인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는 비용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의 재정 부족을 메꿔주는 수입은 정원외로 입학하는 외국인 학생 등록금과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유치에도 한계가 있어 더 늘릴 수 없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은 목적성 사업이어서 비용사용이 제한되고, 정부 예산과 연동되어 크게 확대할 수 없다. 대학 등록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생의 연평균 등록금은 국공립대가 479만 원, 사립대는 850만 원이다. 일본은 국공립대가 517만 원, 사립대는 879만 원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미국은 국공립대가 920만 원, 사립대는 3천180만 원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거의 없다.

일본과 유럽의 대학은 적은 등록금 수입을 정부가 재정지원으로 충당한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는 정부의 대학재정 규모가 OECD 국가 중 1, 2위에 해당한다. 미국도 정부의 재정지원 규모가 우리보다 많고, 아울러 수많은 기부금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한다. 우리는 대학교육에 지원하는 공교육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이고, 대학의 기부금 규모도 미미하다.

고등교육의 질은 투자하는 교육비와 비례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학생과 교원이 있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고, 충분한 연구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 지적 자산을 확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이끌 양질의 교수요원을 확보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의 재정여건이 어려운데, 교육과 연구 성과는 선진국 수준을 요구한다. 그러나 재정확보 없이 대학의 경쟁력은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최근 세계 대학 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등수가 점차 하락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권인 중국, 홍콩, 싱가폴 대학들과도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대학을 통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등록금을 자율화하거나 정부의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