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일주일을 주무시다 민들레 홀씨처럼 가시면서 내게 주고 간 선물은 정신장애 여동생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동생은 불도 켜지 않은 방에 홀로 있다. TV 보는 것조차도 싫은가 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TV를 켜면 숙인 고개를 더 숙여버린다. 답답함에 의사 선생님께 상담하니 조현병 환우들만의 자아 세계가 있단다. 내가 모르는 비밀 세계가 있나 보다.

정신센터 송년회에 함께 갔다. 테이블 위에는 음료수와 과일, 과자가 수북이 놓여있고, 강당을 채운 사람들은 과자를 먹으며 즐기는데 동생은 핸드백을 가슴에 품고 깊은 상념에 잠겨있다. 센터 선생님의 인사에도, 주위 사람들이 말을 걸어와도 묵묵부답이다. 옆에 있던 내가 미안해서 대신 인사를 했다. 이런 행동이 못마땅한 나는 그를 몰랐을 때는 화도 냈다.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마음을 비우니 좀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맞추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배운다는 것을 알았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우듯, 성질 급한 나는 그를 통해 참고 기다림을 배운다.

사람을 싫어하며 문 잠그는 일은 시키지 않아도 잘한다. 집안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열면 이내 곧 닫아버린다. 잠금장치가 있는 문은 모두 잠가 버리는 동생만의 세계를 인정해주고 싶다. 큰소리로 동생을 깨우면 겨우 고개를 들다 이내 숙여 버린다. 어쩌지 못해 허공에다 삿대질하며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다. 통풍 안 되는 집 안에는 습기가 차고, 벽지는 누런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름에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꺼내놓은 선풍기가 민망한지 나를 쳐다본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리면서 큰소리를 쳤다. 동생과의 만남은 언제나 그랬다. 환자니까, 환자니까 이해한다면서도 머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내가 싫고 가끔은 내가 더 환자 같다. 정신장애를 돌보는 것은 힘들고 외로운 길, 어떻게 해야 할지, 애를 태우다 내 풀에 지쳐 무너져 울다가도 내일이라는 희망에 답답함을 추스르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도 없다.

동시집을 건네주니 기어들어 가는 소리를 낸다. 크게 더 크게 읽으라는 말에 입술만 달싹인다. 동화책은 한 장씩 번갈아 가며 읽히니 입가에 미소가 설핏 어리다 만다. 시청한 TV 프로그램을 적으라는 숙제를 주었더니 나와 함께 시청했던 프로그램만 적혀있다. 답답한 나는 허공에 삿대질하며 악을 쓰며 울어 봐도 나아진 것 없는 모두가 그대로였다. 울다 돌아보니 동생의 코 고는 소리만 요란하다. 우리 집에 와서 전화하니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전화 코드를 빼버린 것이다. 걱정되어 쫓아가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자고 있다. 환자니까, 환자니까 이해를 하면서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세상 걱정 없이 사는 동생이 부러울 때도 있다.

고집불통 동생은 어머니가 떠나면서 내게 남겨주신 피를 나눈 자매. 즐거움도 슬픔도 함께 걸어가야 할 운명. 너와 나, 우리 둘,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사는 너는 행복하니.

<장영수 약력>
▲‘문학 세계’ 수필 등단
▲광주 문학협회 회원
▲충성대 문학상, 빛 사랑 한전 문학상
▲표어공모 국방부장관상
▲우리 가정 알뜰생활체험 수기 광주시장상
▲저서 : ‘고동골에 남겨둔 이야기’ 외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