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정보라 작가의 판타지 소설 ‘저주 토끼’가 2022 부커상 최종 후보 지명작에 오르면서 영미권 독자들은 물론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커재단이 지난 7일 홈페이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정보라의 ‘저주 토끼’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6편에 선정됐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불리우는 영국 최고 권위의 소설 문학상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6년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8년 역시 한강의 다른 작품 ‘흰’이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부커재단은 이 소설을 두고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저주 토끼’는 2017년 국내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번 부커상 후보 지명 이후 국내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책에는 표제작인 ‘저주 토끼’를 비롯해 총 10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를 이어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손자와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인 ‘저주 토끼’와 변기 속에서 고개를 내민 채 자신을 ‘어머니’로 호칭하는 괴상한 물체를 마주하는 ‘머리’, 절대 암흑 속에서 목소리만을 따라 힘겹게 어둠 속으로 나서는 이야기인 ‘차가운 손가락’, 수개월 피임약을 복용하던 여성이 아버지 없이 임신하는 ‘몸하다’, 반려자 로봇을 만드는 주인공이 자신이 개발한 인공 반려자 ‘1호’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안녕, 내 사랑’ 등 유머와 공포가 어우러진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배경과 인물, 사건들이 넘치는 작품들은 모두 ‘복수와 저주’를 주제로 하고 있다.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은 가차 없는 저주로 복수를 대신한다. 세상의 몹쓸 것들은 도무지 뉘우칠 줄 모르고, 우리의 주인공들인 피해자에게 용서란 없다.

저자는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다.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롭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그러한 방식을 통해 낯설고 사나운 세상 속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소설을 쓰고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어권의 SF·판타지 문학을 번역하고 있다.

한편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는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의 ‘야곱의 책들’, 욘 포세(노르웨이)의 ‘새로운 이름’, 가와카미 미에코(일본)의 ‘천국’, 클라우디아 피네이로(아르헨티나)의 ‘엘레나는 안다’, 지탄잘리 슈리(인도)의 ‘모래의 무덤’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다음 달 26일 발표한다.

소설집 ‘저주 토끼’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