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agflation)’
이 춘 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 재생 준비중
2010. 08. 19(목) 00:00 가+가-
요즘은 재래시장을 자주 찾는다. 형편도 그렇고 물가 고통 또한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라 그래도 그곳은 낫겠지 하는 생각에서다. 지금 농수산물 값은 장난이 아니다. 예년 같으면 2-4천원이면 살 수 있는 농산물 값이 4-6천원으로 오른 건 보통이다. 갈치, 명태, 고등어 등 수산물 값은 시쳇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아무리 장마철이고 이상기온의 영향이라지만 치솟는 생활물가는 서민들이 인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우리뿐 아니다. 유럽 밀 값은 하루사이 12% 이상 뛰며 연일 사상 최고치다. 미국 밀 값은 6월 이후 한 달 반 만에 80%이상 폭등했다. 40년래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밀 값이 뛰니 대체재인 옥수수 대두 보리 가격도 덩달아 뛴다. 급기야 세계 3위 곡물 수출국 러시아가 밀 등 주요 곡물 수출을 연말까지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애그플레이션은 미국 증권사 메릴린치가 2007년 만든 신조어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것으로, 곡물가격 상승 때문에 일반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2008년에 비해 전 세계의 밀 재고량이 넉넉한 편이어서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선 곡물 수출 제한조치가 러시아에서만 끝나지 않을 경우 현실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상품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아예 “단지를 채우라”고 충고한다. “앞으로 몇 년간 곡물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며 “집에 설탕단지가 있다면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지금 가서 단지를 채워두라”는 것이다.
세계 곡물생산량의 10-12%에 불과한 극소량만 거래되는 곳이 국제곡물시장이다. 카길, ADM, 콘아그라, 컨티넨털. 루이 드레퓌스, 벙기, 앙드레 등 세계 7대 곡물메이저가 쥐락펴락한다. 금융자본까지 가세해 각축을 벌이는 투기자본의 ‘투전장’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생긴 호기는 짐 로저스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투기자본들이 놓칠 리 없다.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최근 국제곡물시장은 폭증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전 세계적인 흉작과 미국의 바이오에너지정책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 때문이다. 중국의 고성장 추세, 조만간에는 중국도 능가할 것으로 보이는 인구 대국 인도의 성장까지 감안하면 국제곡물시장은 그야말로 식량을 얻기 위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될지 여부는 따라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 국제곡물시장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외국의 값싼 농수산물에 의존하는 식량수급정책은 결코 우리가 선택해서는 안 될 정책이라는 점이다.
우리 곡물자급률은 2009년 26.7%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사료용을 빼면 51.4%로 높아지지만 쌀을 빼면 5%대다. 국제곡물시장이 요동치면 우리에게도 거의 즉각 ‘나비효과’가 나타지만 ‘파동’ 수준에 그치는 것은 이 곡물자급률 속에 감춰진 거의 100%에 가까운 쌀 자급도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쌀이 처한 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애물단지도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정부는 남는 쌀(2005년 산)을 동물먹이로 쓰겠단다. 소중한 논이 어떻게 되든 말든 벼를 심지 말 것을 권장한다. 그동안 우리 쌀에 굳게 걸어 잠갔던 보호의 빗장을 푸는 대신 수입쌀에 관세를 매겨 경쟁시키자는 발상도 구체화 단계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쌀에 대한 제대로 된 취급은 없다.
이래서는 곧 다가올 식량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금 빨리 우리 쌀의 처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쌀 산업’이 가야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 대북 쌀 지원문제를 푸는 것은 그 시작이다. 정확한 수요예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논을 유지하되 유휴농지를 활용해 5%대인 곡물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진 보리 밀 호밀 귀리 등의 재배확대가 그것이다.
애그플레이션하면 ‘달걀’에 얽힌 에피소드를 먼저 떠올릴 일이 아니라 올해도 어김없이 대풍이 예상되는, 그래서 더욱 애물단지가 될 우리 쌀을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 정말 간절하다.
우리뿐 아니다. 유럽 밀 값은 하루사이 12% 이상 뛰며 연일 사상 최고치다. 미국 밀 값은 6월 이후 한 달 반 만에 80%이상 폭등했다. 40년래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밀 값이 뛰니 대체재인 옥수수 대두 보리 가격도 덩달아 뛴다. 급기야 세계 3위 곡물 수출국 러시아가 밀 등 주요 곡물 수출을 연말까지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곡물 수출 제한조치가 러시아에서만 끝나지 않을 경우 현실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상품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아예 “단지를 채우라”고 충고한다. “앞으로 몇 년간 곡물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며 “집에 설탕단지가 있다면 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지금 가서 단지를 채워두라”는 것이다.
세계 곡물생산량의 10-12%에 불과한 극소량만 거래되는 곳이 국제곡물시장이다. 카길, ADM, 콘아그라, 컨티넨털. 루이 드레퓌스, 벙기, 앙드레 등 세계 7대 곡물메이저가 쥐락펴락한다. 금융자본까지 가세해 각축을 벌이는 투기자본의 ‘투전장’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생긴 호기는 짐 로저스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투기자본들이 놓칠 리 없다.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최근 국제곡물시장은 폭증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전 세계적인 흉작과 미국의 바이오에너지정책 등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 때문이다. 중국의 고성장 추세, 조만간에는 중국도 능가할 것으로 보이는 인구 대국 인도의 성장까지 감안하면 국제곡물시장은 그야말로 식량을 얻기 위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제2의 애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될지 여부는 따라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 국제곡물시장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외국의 값싼 농수산물에 의존하는 식량수급정책은 결코 우리가 선택해서는 안 될 정책이라는 점이다.
우리 곡물자급률은 2009년 26.7%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사료용을 빼면 51.4%로 높아지지만 쌀을 빼면 5%대다. 국제곡물시장이 요동치면 우리에게도 거의 즉각 ‘나비효과’가 나타지만 ‘파동’ 수준에 그치는 것은 이 곡물자급률 속에 감춰진 거의 100%에 가까운 쌀 자급도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쌀이 처한 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애물단지도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정부는 남는 쌀(2005년 산)을 동물먹이로 쓰겠단다. 소중한 논이 어떻게 되든 말든 벼를 심지 말 것을 권장한다. 그동안 우리 쌀에 굳게 걸어 잠갔던 보호의 빗장을 푸는 대신 수입쌀에 관세를 매겨 경쟁시키자는 발상도 구체화 단계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쌀에 대한 제대로 된 취급은 없다.
이래서는 곧 다가올 식량전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금 빨리 우리 쌀의 처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쌀 산업’이 가야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 대북 쌀 지원문제를 푸는 것은 그 시작이다. 정확한 수요예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논을 유지하되 유휴농지를 활용해 5%대인 곡물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진 보리 밀 호밀 귀리 등의 재배확대가 그것이다.
애그플레이션하면 ‘달걀’에 얽힌 에피소드를 먼저 떠올릴 일이 아니라 올해도 어김없이 대풍이 예상되는, 그래서 더욱 애물단지가 될 우리 쌀을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 정말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