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마이뉴스가 단독 보도한 뉴스가 충격적이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전쟁시나리오’를 공모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거니와 “전형적인 재래전 틀에서 벗어나 현대전 특성에 맞는, 서울의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새로운 (전쟁)시나리오를 발굴하기 위해서”라는 배경설명은 섬뜩하다. 더 나아가 예시문에는 ‘적의 입장에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자유형식으로 서술하라’고 적고 있다니 폭력에 가까운 반교육적인 행태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이맘때 ‘6·25 59주년의 상흔(傷痕)들’이란 칼럼에서 ‘분단체제의 내면화’를 걱정한 적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이 모든 것을 갈라놓았고, 의식구조에도 영향을 줘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한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는지 강조하고 싶었다. 6·25 60주년인 올해는 그 전쟁의 내재화보다도 더 걱정되는 것이 있다. 천안함 사태로 되살아난 전쟁의 광기(狂氣)가 그것이다. ‘적의 입장에서 어떻게 공격할지 서술하라’는 전쟁시나리오 공모는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칼럼에서처럼 살벌한 광기가 느껴진다.
‘전쟁론’(Vom Kriege)을 쓴 카를 본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6.1-1831.11.16)는 12살에 입대해 50살쯤 되던 해 콜레라에 걸려 급사할 때까지 군인이었다. 불후의 명저를 남긴 군사전략이론가로 평가받는 그는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 보았다. 전쟁은 정치의 한 도구로,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했다. 군사적 갈등이나 그로 인한 전쟁은 당연히 정치권력의 합리적 계산과 결정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고 관리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평생 군대 밥 먹으며 전쟁을 궁리하던 시기는 ‘전쟁=수지맞는 사업’으로 인식되어가던 때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김기섭에 따르면 18세기까지도 전쟁은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근세 영국만 해도 웬만한 전쟁에는 경상수지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었고, 충분한 전리품을 챙길 수 있게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정권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양상은 달라진다. 제로섬 또는 마이너스섬게임이던 전쟁이 플러스섬게임으로 변했다.
이런 맥락에서 6·25는 열강들에겐 플러스게임이자 정치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긴장고조는 군비증강으로 이어져 열강들의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군사적 케인즈주의’가 작동한다. 하지만 한민족에게 6·25는 동족상잔의 참극이었을 뿐이다. 다시 전쟁이 벌어지면 한반도는 또 한번 열강들의 대리전이 펼쳐지는 각축장이 될 것이고 남북은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은 초·중·고교생들도 안다. 더구나 핵시대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 아닌 종말을 뜻한다는 점에서 전쟁시나리오 공모는 중증(重症)의 시대착오다.
천안함 사건발생 두 달 뒤인 5월 25일자 영국 ‘가디언’(Guardian)지는 ‘남북한 전쟁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라는 기사에서 한반도에서 전면전 발발의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천안함 사태 뒤 남과 북이 주고받은 극단의 위협과 경고로 인해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이 조성된 상황이었음에도 해외 언론들은 한결같이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 개연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불꽃은 종종 사소한 곳에서 사소한 일 때문에 발화된다. 정치권력의 합리적 계산과 결정에 의해 치러지기도 하겠지만 신진욱 교수(중앙대)의 지적처럼 ‘우발성’과 ‘불확실성’이 전쟁발발의 요인이었던 적이 더 많다. 지금 한반도에 군사적 대결상황이 만들어낸 불안, 불신, 공포, 증오, 분노, 복수 등의 집단감정은 그래서 더욱 위태롭고 소름 돋는다.
내일은 6·25 발발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때마침 공영방송이 만들어낸 전쟁드라마에서처럼 승리의 추억이나 찐한 전우애가 아니다. 6·25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참극이었음을 다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은 남한에 의한 통일을 가져온다.’는 식의 망상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당국이 진정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