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 1번지 여의도. 호남 영남 강원 충청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무림고수’들이 각자의 비책을 가지고 일합을 겨루는 곳이다.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장풍을 쓰지는 않지만, 그 못지않은 내공으로 적을 향해 또는 아군을 향해 비장한 칼날을 날리는 곳이 바로 여의도다.

요즘 여의도에는 광주·전남 엘리트들의 때 아닌 ▲잠행(潛行)과 ▲의기투합과 ▲고민이 넘쳐나고 있다. 우선, 7·28 남구 보선 출마예상자들의 출몰이 눈에 띈다. 그런데 무림의 각 계파가 선호하는 무기가 다르듯 입지자들의 잠행 스타일도 다르다.

J씨, L씨, 또 다른 L씨 등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주로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실을 자주 찾는다. 남구 보선 후보자 결정이 결국 전략공천으로 갈 수밖에 없어 ‘실세’에게 얼굴을 디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J씨 같은 이는 국회에 직접 들어오기 보다는 국회 인근 호텔 등에서 유력자들과 만나 소리 나지 않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스타일이다. 현재 남구 보선 입지자들의 출마선언이 계속되고 있어 여의도에 출몰하는 ‘검객’들은 앞으로도 더욱 많이 목격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의도 무협지’에는 보궐선거 출마자들만 실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8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또는 최고위원에 도전하는 현직 의원들의 사전 정지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14일 밤 여의도 거리에서는 김효석 의원(61·장성)과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47·고흥), 임종석 전 의원(44·장흥) 세 사람의 흥겨운 모습이 목격됐다. 이들 중 김 의원은 당권도전을 선언한 상태이고 임종석 전 의원은 ‘세대교체’ 바람에 힘입어 최고위원 출마가 유력하다.

김효석 의원의 경우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이날은 반주를 한 두 잔 걸쳤는지 기분이 매우 ‘업’돼 보였다. 이들의 저녁 자리가 단순한 선후배간 만남이었는지, 아니면 큰 전쟁을 앞둔 장수들의 ‘의기투합’이었는지는 8월의 전당대회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여의도 무협지의 전선이 확대되면서 광주·전남 출신 의원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민주당 ‘대표 검객’ 도전이 예상되는 광주·전남 지역구출신 국회의원이 박주선 의원(재선, 광주 동), 김효석 의원(3선, 담양·곡성·구례) 등 2명이기 때문.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현 정세균 대표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누가 후보가 되더라고 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고위원 출마 희망자의 경우도 유선호 의원(3선, 장흥·강진·영암)과 이낙연 의원(3선, 함평·영광·장성)이 입지를 밝히고 있어 후보단일화가 안될 경우 필연적으로 광주·전남표가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깊은 산속으로 은둔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일 열린 민주당 몫 국회부의장 경선에서 같은 5선인 김영진 의원(광주 서을)의 양보로 광주·전남 단일후보로 나섰던 박상천 의원(고흥·보성)은 충청의 ‘협객’ 홍재형 의원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한 이후 현재 두문불출이다. 광주·전남 국회의원 중 최고 ‘노검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은둔에 ‘후배 검객’들은 내놓고 위로도 못할 형편이라 전전긍긍이다.

이처럼 지금 여의도에는 밤낮으로 ‘잠행’과 ‘의기투합’과 소리 없는 ‘고민’이 중첩되고 있다.

/서울취재본부 국장 jski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