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 살고 있는 독지가가 고향을 위한 기부에 이어 답례품마저 이웃을 위로하는 데 써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7일 오전 11시께 광주 동구 들랑날랑커뮤니티센터에선 장대비가 내리는 바깥과 비슷한 빗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홍빛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와 함께 센터 안을 가득 메운 이 소리는 열기 가득한 주방에서 땀이 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쉼 없이 집게를 놀리는 어르신들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잠시 후 시작될 ‘들랑날랑 삼겹데이’를 앞두고 인근 쪽방촌 주민들이 하나둘씩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주방 바깥에선 잘 익은 수박을 큼지막하게 자르고 단호박과 톳, 버섯이 듬뿍 들어간 ‘영양밥’을 고루 섞으며 손님맞이에 바쁘게 움직였다.

오전 11시20분께 테이블 10여개의 빈자리가 대부분 채워지자 배식이 이뤄졌다.

배식 봉사에 함께한 임택 동구청장과 문선화 동구의장 등은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민들에게 손수 삼겹살을 전해 드리며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잘 익은 삼겹살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상추에 마늘과 고추 등을 함께 넣어 쌈을 먹으며 봉사자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쌈채소와 같이 놓인 묵은지, 버섯볶음, 콩나물 무침 등 삼겹살과 궁합이 좋은 반찬들도 입맛을 돋워 식사 내내 주민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초복을 사흘 앞두고 맛있는 점심 식사로 쪽방촌 주민 60여명의 몸과 마음을 모두 위로한 이날 행사는 익명의 독지가 A씨의 연이은 선행으로 마련됐다.

현재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올해 초 동구에 고향사랑기부금 500만원을 기탁했다.

동구는 A씨가 나고 자란 고향이며 현재 그의 어머니도 살고 계신 것으로 전해졌다.

고향사랑기부제에 의해 기부자에겐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포인트가 제공된다. 이 포인트론 해당 지자체에서 정한 답례품을 구매할 수 있다.

A씨가 150만원에 달하는 이 포인트마저 자신이 아닌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길 원하자 동구는 쪽방촌 주민을 위로하는 행사를 제안했다.

이에 호응한 A씨는 포인트를 사용해 삼겹살과 채소, 수박 등을 직접 주문하며 행사 준비에 손을 보탰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A씨는 실명을 밝히길 한사코 거절하는 대신 “다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마음만 짧게 전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