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년이 온다’ 속 시대적 배경과 유사한 지금의 현실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위선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라 믿습니다.”

11일 오전 12시30분께 광주시청 1층 시민홀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을 지켜본 이세훈(32)씨는 이 같이 말했다.

광주시는 스웨덴 현지 노벨상 시상식에 맞춰 전날 오후 8시부터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시민 축하행사’를 개최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특강과 1부 문학의 밤, 2부 한강의 시간(재즈, 극예술, 샌드아트 등) 등의 부대행사를 마련해 시상식 전 광주시민들이 한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한강 작가에게 쓰는 축하편지에 시민들은 “12·3 비상계엄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무력과 강압으로 인해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고 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후 자정 무렵부터 시상식이 진행되자 행사장에 모인 300여명의 눈과 귀가 일제히 대형 스크린으로 향했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시상 후 문학상 차례가 다가오자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한강”을 외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5·18민주화운동을 보다 자세히 알게 됐다는 이씨는 “44년 전 군홧발에 짓밟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옛 전남도청 앞으로 나섰던 시민들의 외침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한강 작가의 수상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위선자들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수상식 후 행사장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작된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영상 속 동호는 “몸이 없어도 눈을 뜨고 많은 것을 지켜볼 수 있다”며 “죽은 이의 혼은 육신이 아닌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머물기에 여러분의 기억이 곧 나의 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책을 펼치던 그 순간, 저는 늘 여러분 손길 곁에 있었다”며 “다시 살아날 기회를 준 한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동호의 모티브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문재학 열사로, 이날 행사에는 문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도 함께했다.

행사 인사말을 통해 한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김길자씨는 아들의 생전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붉은 눈시울로 눈물을 쏟아냈다.

한편 광주시에 앞서 광주 동구와 북구도 전날 오후 4시에 각각 ‘소년이 온다 낭독회’와 ‘북구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했다./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