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승천도’

‘베가91-1’

효녀 심청, 선녀와 나무꾼, 견우와 직녀…. 제목만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전래 이야기다.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설화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형성하는 내적 자양분이 된다. 설화적 주제를 차용한 정승주 작가의 회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친근하고도 따뜻한 감정을 안겨준다.

‘화향, 기억의 향을 담다’를 주제로 한 정승주 작가의 유작전이 오는 27일까지 전남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정승주 작가의 딸 서연 씨가 마련한 자리다. 지난해 작고한 아버지의 작업실을 정리하며 그간의 작품들 중 대표작을 모아 세상에 선보이고자 한 것.

전시 주제인 ‘화향’은 그의 작품 배경에서 등장하는 꽃 내지는 그림의 향기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다.

정승주 작가는 40년 가까이 전남대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수화가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와 화단의 흐름 속 아카데믹 화풍을 토대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며 구상 화가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설화적 요소를 차용한 그림뿐만 아니라 해녀와 어부가 등장하는 바닷가 풍경, 꽃과 여인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그의 연작들은 색다른 화면 구성과 색채 변화가 특징이다.

딸 서연 씨는 “전시를 준비하며 아버지의 60여 년 화업인생과 작품활동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인상주의나 앵포르멜이 주를 이뤘던 1980년대 호남 서양화단에서 아버지는 구상미술, 특히 인물화에 천착해왔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대학 시절 실험적인 풍경 그림을 비롯해 고향인 목포 바닷가의 생생한 현장과 인물을 함께 배치한 재현적 도상의 그림,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담아낸 전래 이야기까지 다채롭다.

전시에서는 ‘재현의 시작’, ‘표현의 상징성’, ‘순수성을 향하여’ 3개 주제에 따른 시기별 작품 총 26점을 만나볼 수 있다.

직녀성을 뜻하는 ‘베가’라는 제목의 작품이나 두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귀환하는 내용의 작품 ‘선녀승천도’ 배경에선 1980년대 초반 유럽 연수 중 큰 감명을 받았다는 클림트 그림의 독특한 패턴이 엿보이기도 한다.

꾸준한 드로잉 연습과 데생으로 구현된 그의 그림 속 인물은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여기에 인물을 둘러싼 환상적인 느낌의 배경은 작품에 신비감을 더한다.

그의 후기 작품은 ‘순수 조형’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 작업 초반에 비해 형태와 구성이 단순화됐지만 인간 내면을 향한 순수성을 탐구하며 또다른 변화를 모색한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서연 씨는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색채나 구도 등 인물에 대한 연구에 전념한 작가 정승주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재조명해 보고자 했다”며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추앙받는 인체를 바탕으로 순수 조형 세계를 탐구한 그의 그림이 관람객들에게 따스함과 위안을 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