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간 지적장애아동의 순수한 세계에 천착해 작품활동을 이어온 광주 출신 김근태 화가의 인생과 회화정신이 담긴 창작동화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책고래아이들 서른세 번째 이야기 ‘들꽃처럼 별들처럼’(책고래출판사刊)이다.

‘마야와 마법의 집’, ‘온양이’ 등 다수의 동화책을 펴낸 동화작가 선안나 씨가 집필했으며, 여기에 이상윤 작가의 그림이 더해졌다.

이 책은 대학시절 5·18 광주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트라우마를 평생 가슴에 안은 채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들을 수도 없지만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 김 화가의 이야기다. ‘5·18민주화운동’과 ‘장애인’이라는 무겁고 큰 주제를 함께 담고 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 노마는 네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린 나이에 장애인이 된 노마에게 불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누나가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디에도 기댈 데 없던 노마가 유일하게 마음을 쏟은 것은 그림이었다. 마침 노마의 그림을 유심히 봤던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대학을 준비하던 중 유일한 친구 옥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화가

오랜 방황 끝 겨우 마음을 잡고 광주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한 노마는 1980년 5월18일,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이 됐다.

친구들의 시신이 놓여 있는 도청에 남아 죽음을 각오한 순간, 노마는 ‘제발 죽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도청을 빠져나왔다.

노마는 스스로 동료들을 배신한 거라 생각해 평생 죄인으로 살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발버둥쳤다.

죽음의 고통에서 노마를 살려낸 건 그림과 아내 순이었다.

특히 지적장애인을 그리면서 노마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UN에서 초대장이 날아오고, 수많은 나라에서 전시 요청이 왔다. 평화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에 노마의 그림이 걸리기도 했으며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100미터짜리 그림도 그렸다.

노마는 지금도 몸은 불편하지만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적장애인을 그림으로 그리기에 심혈을 쏟고 있다.

선 작가는 생존해 있는 실제 인물 이야기를 포장하고 둘러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표현했다.

실제로 김 화가가 그려 온 지적장애아동의 모습은 우울하거나 나약하지 않다. 힘이 넘치는 선, 빨강과 파랑이 어우러진 강렬한 색, 초록 들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으며 금방이라도 천진한 웃음소리가 들릴 듯하다. 아픈 아이들에게 선물하고픈 자유와 사랑이 그대로 전해진다.

선안나 작가는 “화가의 삶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동화 문학의 고유한 특성인 상상과 환상 기법을 활용해 책을 펴내게 됐다”며 “화가의 생애에 녹아든 5·18민주화운동은 아프지만 생생히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동화가 교육의 도구는 아니지만, 분명 어린이의 마음에 신비로운 씨앗을 심어줄 것이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