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름다운 봄날의 아침이다. 꽃들이 시간 따라 활짝 이는 느낌이다.

봄 향기가 가득한 어느 날 빠끔히 열린 베란다 창 사이로 향그런 꽃내음과 싱그런 바람이 한 움큼 스며든다.

화단에 핀 동백꽃과 목련의 자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즈음엔 넓은 아파트 화단 가득 여러 가지 화초와 개나리, 철쭉, 영산홍 등꽃들이 웃음을 준다. 머슴아의 팔뚝만큼이나 우람해 보이는 벚나무에도 하얗고 탐스러운 벚꽃이 한창이다.

매양 그렇듯이 생활에 쫓기다 보면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에도 별다른 감정을 담아 보기가 쉽지 않다. 문득 되돌아보는 시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황폐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되나 보다. 오늘은 잠시일망정 일상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뜻깊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 어쩔 땐 때때로 웃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유머로 상대방을 즐기는 때와는 달리 내면에 감추어진 슬픔이란 덩어리가 치밀어 오른다. 대장에 악성선종이 생성되어 초기 암 판정을 받고 수술에서부터 입, 퇴원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모든 일에 의욕이 서지 않는다. 병을 약으로 삼으라는 말처럼 병을 배척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몸의 일부라 생각하며 감정을 정리했다.

오늘은 좀 색다른 방법의 하나로 화단 뜰에 다가가서 꽃잎의 모양새도 살펴보고 향기도 맡아본다. 이름 모른 화초에는 그 꽃에 어울릴 이름도 지어볼 수 있는 특권도 누려 보면서 잠깐의 시간 속에 나를 묶어 둘 수 있었다. 어디 이 세상에서 미와 선을 찾는다면 비단 꽃만이 아름답고 빙그레 웃는 아기의 얼굴만이 그 전부이랴.

내리쬐는 태양열에 못 이겨 양은 대야에 물을 담고 손을 적시며 내려다보았을 때 햇살에 반사되어 잘게 물결 짓는 파문도 아름다울 것이다. 또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공을 다투는 법이 없이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자기를 더럽혀 남을 깨끗이 하지만 자랑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계란 장사나 과일 장사 아저씨의 우악스런 발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엔 근면이라는 진미가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마음이 제자리를 찾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제 삼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을 때엔 기도도 할 줄 아는 자신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주님! 남에게 거짓으로 대하지 않게 해 주소서. 보잘것없는 것에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며 조그마한 성의에도 깊이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소서. 태만과 나태를 물리치사 인내를 주시어 이상을 향해 가는 도중 불가피한 저해 요인이 있어 잠시 쉬는 한이 있을지언정 결코 좌절하지 않는 자 되게 해 주소서.”

이 모든 것의 과정에는 환경과 그때마다 괴로움이나 사람에 따라서 그 결과가 좌우된다. 무엇보다 우선적이어야 할 것은 뚜렷이 자기가 바라는 자아상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자아상을 정립함에 있어서 정직과 성실이 뒤따라야 하며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다면 꼭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주현진 약력>
▲대한문학 수필, 동산문학 시 등단
▲대한문학 작가회 부회장
▲광주시인협회, 광주문인협회 이사
▲광주수필문학, 영호남문학회 부회장
▲수필집 : ‘기다리는 마음’
▲시집 : ‘황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