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부모님과 옛 친구, 눈 덮인 산야와 포근한 바다, 양지 바른 뒷동산과 따뜻한 온돌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곳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하고 넉넉해지는 이유는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이 담겨 있다. 필자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뼈가 자란 곳인 해남에는 아직도 동백꽃이 피어 있다.

지금은 옛 친구도, 초가집도, 마을 앞 우물도, 소 몰고 가던 길도 없어지고, 유년시절의 흔적이 송두리 채 사라졌다 하더라도 고향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으로 다정다감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고향이란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운명 같은 곳이며, 어머니의 품속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런 고향이 있기에 매년 명절 때마다 홍역을 치루 듯 어김없이 그 머나먼 길을 마다하고 즐거움과 설렘으로 찾곤 한다.

고향에 내려가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면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떠날 때에 고추, 마늘, 참깨, 콩 등 정성이 담긴 곡식을 넉넉히 담아 주시며 마을 앞 회관까지 나오셔서 배웅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젠 계시지 않아 고향땅에 발걸음이 점점 멀어진다 할지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고향과 어머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베이비붐 시대의 우리의 어머니는 비록 배우지 못했으나 남편에 대한 절대적 순종, 가족과 자녀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운명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오셨다. 호미 한 자루로 모진 농사일과 자녀 양육, 시부모 봉양, 가사 일을 도맡아 희생만 하셨던 우리 시대의 어머니, 그런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이 훌륭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높은 벽을 이미 뛰어 넘어 세계 7대 무역 강국,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어머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거나 늙고 병들어 자녀들의 보살핌과 효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는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이 이미 돌아가셨거나 보통 80-90세의 고령이 대부분이다.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고향을 일찍 떠난 경우 자녀들이 더 이상 고향을 찾지 않거나 부모가 있다하더라도 교통 혼잡으로 부모님이 귀경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도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고향땅을 결코 잊을 수는 없다. 자녀들을 무척 사랑하셨지만 표현하지 않으셨고 잘못이 있을 때에는 가차 없이 회초리를 잡으시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과 예절, 그리고 가문의 뿌리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체취가 새삼 그리워진다.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가끔 고향에 내려와 형제간에 오순도순 얘기하며 우애를 나누었다. “너희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항상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아버님 생전의 말씀을 기억하며 지금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지만 주기적으로 고향집에서 형제가 만나곤 한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만 형제간이란 말이 있듯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간에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재산 배분 문제로 형제끼리 서로 갈등하며 남보다 더 멀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 소홀하기 쉬운 형제간의 우애를 끊임없이 연결해 주고 있는 고향, 그런 고향이 있어 필자는 행복하다. 이것이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이며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마을의 인근에는 ‘해남윤씨 녹우당’과 고산이 머무르면서 산중신곡을 썼던 ‘금쇄동’과 ‘대흥사’가 있다. 그리고 강진만의 해안선을 따라가면 ‘가우도 출렁다리’와 정약용의 유배지로 알려진 ‘다산초당’도 가깝다. 어릴 때 추억이 깃든 마을 앞 바다는 간척사업으로 사라지고 저수지와 넓은 농토로 변해 출렁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다.

필자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집 이제는 부모님도 모두 떠나고 빈집으로 남아 있으나 가끔 내려가 머무르면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