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비비꼬인 등나무둥치를 본다
황폐한 나무의 거죽이 무말랭이처럼 고요하다
바로 설 등뼈가 없는 등나무
뇌성마비처럼 온몸을 비틀어
얽힌 두 지체가 서로를 감아 버티고 있다
후들거리는 비상이 꽃으로 피어있다
보랏빛을 뽐내는 화려한 꽃잔치
놀이터의 해맑은 웃음소리
누군가 제 몸을 비틀어
등 거죽까지 짓눌러 짜낸
눈물을 마시고 자란 웃음이다
나무마다 주름이 있다
주름이 깊을수록 향기가 깊다는데
빨래를 짜듯 저를 쥐어짜서
수액을 한 모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바닥 모를 추락의 보시
저 주름의 깊이에 꽃의 밥주머니가 있다
형극의 절벽에 외발로 서야
비로소 피워낼 수 있다는
생의 꽃
말라붙은 젖무덤 같은 등나무 둥치들
요양 병원 다인실에 하늘 닮은 꽃으로 피어있다.

<전숙 약력>
▲‘시와 사람’ 신인상
▲나주예술문화 대상,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백호임제문학상, 한국Pen 문학상
▲한국가사문학대상 우수상, 고운최치원문학상 대상
▲광주문학상
▲현 ‘문장21’ 책임편집위원
▲시집 : ‘나이든 호미’ 외 4권 상재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전숙 님의 시 ‘주름의 깊이’에서의 시적 화자는 놀이터에서 비비 꼬인 등나무 둥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등나무는 연보랏빛 꽃마다 뜨거운 향을 뿜어내고 있다. 그 진한 향에 마음이 흠뻑 취하는데 삶의 바닥으로 한 생을 내려놓는 아픔들이 느껴져 아리다. 등나무의 시간이 요양 병원 어느 노인의 삶 같아 슬프다. 시적 화자는 그 삶을 ‘바로 설 등뼈가 없는 등나무’라고 말하고 있다. 서럽고 아픈 표현이지만 멋지다. 등 꼿꼿한 하루는 어디 가고 생의 마지막을 기다려야 하는가. 허나 무작정 슬프지만은 않다. 그리움을 꺼내고 기다림을 지으며 담담히 살아가는 삶. 시적 화자는 그 삶을 ‘후들거리는 비상이 꽃으로 피어 있다’고 말한다. 맞다. 그것은 ‘등거죽까지 짓눌러 짜낸/ 눈물을 마시고 자란 웃음’이다. 문득 숙연해진다. 먼 훗날 우리의 모습도 저리 담담하고 맑으면 좋겠다. 주름이 깊을수록 향기가 깊단다. 우리의 골 깊은 주름에는 어떤 향기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시적 화자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형극의 절벽에 외발로 서야/ 비로소 피워낼 수 있다는/ 생의 꽃’을 피울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살아왔던 길을 되짚어 보며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시상의 흐름을 이미지와 상징의 퍼즐로 맞춰 가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솜씨가 뛰어나다. 결코 강요하지 않으면서, 사색의 문을 여는 솜씨 또한 세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