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人(고인) / 매창 이계랑
송백같이 맺은 사랑 약속의 사랑에
사랑하는 그 마음 바다처럼 깊은데
강남땅 소식 끊기고 마음만 아프구나.
松柏芳盟日 思情與海深
송백방맹일 사정여해심
江南靑鳥斷 中夜獨傷心
강남청조단 중야독상심

조선의 3대시기(三大詩妓)로는 개성의 황진이(黃眞伊·1506-1544 추정), 부안의 이매창(李梅窓·1573-1610), 그리고 허난설헌을 대신해 평남 성천의 김부용(金芙蓉·1820-1869)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었다. 황진이를 거쳐 간 남정네들이 있었던 만큼 이매창을 거쳐 간 남정네들도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고인인 연인도 있었음을 알게 한다. ‘송백같이 맺은 사랑의 약속인데, 사랑하는 그 마음 바다처럼 깊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이 한밤 홀로 지새우니 마음만 이렇게 아프구나’(故人)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매창(梅窓) 이계랑(李桂娘:1573-1610)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당시 기생들이 그러했듯이 각종 악기와 가무를 잘 익혀 배웠고, 양반들과 시를 주고받기 때문에 문장과 서화 학습도 중요하게 시행해 웬만한 시인 가객 못지않은 뛰어난 글재주를 보여줬던 부안의 기녀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송백같이 맺은 사랑이 이토록 약속인데 / 사랑하는 그 마음 바다처럼 깊었어라 // 강남땅의 반가운 소식일랑 모두 다 끊어지고 / 이 한밤 홀로 지새우니 마음만 이렇게 아프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옛 사랑’으로 번역된다. 송백(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아우르는 말로, 흔히 절개가 굳은 마음과 일편단심을 송백(松柏)으로 표현했다. 남자 쪽보다는 여자의 굳은 절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인의 정인 유희경(劉希慶:1545-1636)이 임진왜란으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던 인물로 알려진다. 강남(江南)은 바다 건너 쳐들어 온 왜병을 무찌르기 위해 남쪽 지방을 뜻한 시어로 봄이 좋은 듯싶다.

시인은 기구와 승구인 경치 구에서 시인 자신의 송백과 같이 굳은 절개를 시적 주머니로 끌어안은 모양새를 갖춘다. 내 마음은 송백같이 맺은 사랑의 약속에 충만 돼 있고, 그대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바다처럼 깊기만 한다고 했다. 내 마음은 이러한데, 그대 마음은 어떠한지를 묻는 정신적인 함축이다.

화자는 전구에서 자신의 일편단심에 대한 응대로 상대에 대한 도톰한 애정산맥의 그 깊이에 한정하는 마음을 엿보려는 심회를 보게 된다. 강남땅의 반가운 소식은 이제 끊어지고, 이 한밤 홀로 마음만 아프다고 했다. 애타게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 그 마음을 몰라주는 원망이 가슴속에 파고드는 시상이다.

※한자와 어구

松柏: 소나무와 잣나무. 芳盟日: 꽃다운 맹세의 나날. 思情: 사랑하는 정. 혹은 마음. 與海深: 바다와 더불어 깊다. // 江南: 강남땅. 임진왜란으로 의병장으로 갔던 유희경을 뜻하겠음. 靑鳥: 청조이나 좋은 소식을 뜻함. 斷: 끊어지다. 中夜: 한 밤 중. 獨: 홀로. 傷心: 마음 아파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