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친구의 유무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진리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다른 이와의 관계를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 늘 한 뼘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살다 보면 그 거리까지도 여념 없이 토닥여줄 수 있을 막역한 친구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녹록치 않은 일이다. 특히나 경쟁이 난무하는 치열한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친구 한 명쯤은 필히 있어야 하는 듯 보인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범위로는 학교를 함께 다녔다거나 혹은 비슷한 나이대로 거의 유사한 시대 배경과 사회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대수일까? 사회적 정의가 그렇다는 것이지 친구로 정의해볼 수 있는 관계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친구라는 존재가 화가들 사이에선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고흐와 고갱’이라는 두 대가의 어긋난 우정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둘 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화가들인 만큼 강한 성격 탓에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기보다는 만남 이후 줄곧 부딪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고흐가 귀를 자르게 된 사연과도 연관이 있는 고갱과의 에피소드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괴팍했던 성격 탓에 고흐는 친구도, 함께 그림을 그릴 화가 친구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늘 그를 부모처럼 때론 형처럼, 친구처럼 챙기던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그의 삶은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가 있었다.

아를로 이사한 고흐는 화실을 새로 마련한 뒤 온통 노랑으로 칠한 화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릴 동료들을 모아 화실 공동체를 꾸미고 싶어했다. 이런 형을 위해 동생 테오는 고갱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형과 함께해 줄것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테오의 부탁도 있고 해서 제안을 받아들인 고갱은 아를의 노란 화실로 들어오게 되지만,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의 싸움은 시작되고야 만다.

싸움의 발단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의 모습을 그린 고갱의 그림에서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형편없이, 그것도 제일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주 볼쌍사납게 그려낸 고갱의 그림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고흐가 화를 내면서 시작된다.

고흐 作 ‘해바라기’ <위키피디아 검색>

그러다 화를 내는 고흐의 모습에 정색하고 고갱이 화실을 떠나겠다고 하자 고흐는 급기야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다. 이 모습에 질려버린 고갱은 그길로 곧장 집으로 가버렸다.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고갱과의 다툼이 가장 유력하다.

그렇지만 고흐와 사이가 틀어지고 한참 뒤 드러난 고갱의 속마음에는 실은 고흐에 대한 질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싸우고 난 다음 고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위해 고흐가 애써 꾸며 놓았던 아를의 화실 방안에 걸려있던 해바라기 액자를 보내주면 안되겠냐고 물어 온 것을 보면, 실은 그는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던 걸로 보인다. 이를 듣고 손사래를 쳤지만 고흐도 내심 그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결국 삶의 한 부분을 서로 공유했던 고갱과 고흐 이 두 거장의 만남이 팔할이 비록 다툼이기는 했지만, 화가로서 서로의 인생에 밑바탕이 되어주는 커다란 사건으로 서로에게 남았을 것이다.

또 하나 소개해 볼 수 있는 명화 속 유명한 ‘막역지우’로는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세잔’과 그의 소설가 친구 ‘에밀졸라’가 있다. 둘의 우정은 너무 유명해 그들이 살았던 엑상프로방스에 가면 둘을 기념하는 ‘두 소년’이라는 카페가 있을 정도이고 둘의 일생은 영화화 되기도 했다.

세잔 作 ‘검은 시계가 있는 정물’ <위키피디아 검색>

두말할 필요 없이 화가 세잔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사과 한 알. 세잔의 사과가 유명한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세계적인 화가가 되도록 만들어 준 이는 누가 뭐래도 에밀졸라였다.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던 졸라를 항상 챙기던 세잔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건넨 사과 한 알은 그의 생에 첫 번째 의미있는 사과이기도 했다. 후에 세잔이 변호사와 화가 사이에서 장래 걱정에 고민이 많았을 때도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에밀의 역할이 가장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둘의 인연은 서로의 삶과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 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서로 싸우며 친해진다고들 하지 않는가? 게다가 싸우지 않으며 유지되는 관계가 어디 있을까? 특히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는 이런 부분이 ‘꼭’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뭐해도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듯하다.

어김없이 세잔과 에밀졸라 사이에서도 다툼이 발생하고야 만다. 우정에 금이 가게 된 사건은 현실 속 사회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확실하게 성공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도 늘 느긋한 면만 보이던 세잔의 태도가 불만이었던 에밀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세잔을 비난하는 일로 시작됐다.

작품에는 실패한 화가 클로드랑티에가 지리멸렬하게 삶을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누가 보아도 세잔이었다.

실상 말이 그렇지 비록 실명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 속에 누구나가 다 자신임을 짐작할 만큼의 묘사에, 그것도 좋지 못한 캐릭터로 등장한다면 독자들의 입장은 어떨 것 같은가?

이 소설을 본 세잔은 격분했고 결국 둘 사이는 끝나 버린다. 그렇지만 에밀졸라가 세잔이 정말로 미워서 그랬을까? 비록 싸워 서먹한 관계가 되긴 했지만 속으로는 늘 서로를 그리워했던 둘이다.

훗날 드레퓌스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 에밀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세잔이 사흘을 내리 울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둘의 우정은 ‘바늘이 없는 시계’가 맞는 듯 보인다.

<이현남· 전남대 강사>

둘은 늘 작품을 완성하면 서로에게 처음으로 가져가 보여주며 많은 의견을 나누곤 했었다. 세잔의 그림 중에도 이런 에밀을 위한 작품이 존재하는데,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검은 시계가 있는 정물’이 그것이다. 오래 이어져 온 자신들의 우정과 예술가로서 서로 보완을 해주고 있던 에밀에 대한 마음을 세잔은 이 그림에 담았다.

정물들 중에서도 검은 시계가 유난히 눈에 튀는데, 시계에는 분침과 초침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을 역설이라도 하듯 자신들의 우정에는 ‘영원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나는 어떤 이의 종자기인가?’

서로를 지음(知音: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친한 친구)이라 칭할 수 있었던 백아와 종자기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