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빈 들녘
박주가리가 흔들거리며
빈껍데기만 달그락 거리네

속살에 감추었던
씨방이 ‘툭’ 터지면
씨앗들이 날개 달고
저 멀리 여행을 떠나네

품안 떠난
자식들 걱정에 다 내어 준
어머니의 빈 가슴처럼
박주가리 씨방만 남아있네

<김형순 약력>
▲ ASIA 서석문학 이사, 등단(2016)
▲ 광주시인협회 이사, 충장문학 총무
▲ 한실문예창작 회원, 방그레 문학회 회원
▲ 서구문화원 다박솔 회원, 별숲 동인
▲ 광주문인협회 박길무 문학상수상


- 평 설 -
김형순 님의 시 ‘엄마의 빈방’에서의 시적 화자는 어머니와 박주가리를 대비시켜 묘사하고 있다. 늦가을 박주가리는 씨방의 문이 열리자 자식 같은 씨앗들을 하나 둘 너른 세상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 품을 떠난 자식들 걱정에 바람이 불 때마다 어머니는 다시 염려를 실어 보내느라 계절을 몽땅 썼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늦가을의 빈 계절 같은 빈껍데기로 남았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늦가을 빈 들녘/ 박주가리가 흔들거리며/ 빈껍데기만 달그락’거린다며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날까. 혹시 어머니의 무릎이 닳고 닳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것일까. 혹시 허리가 굽어 힘들게 일어설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것일까. 혹시 자식들이 보고 싶어 자식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소리일까. 자꾸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어머니가 떠올라 울컥해진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박주가리는 늦가을 찬바람에 손발이 갈라지더라도 햇살 한 줌까지 긁어모아 자식 같은 씨앗을 품었을 것이다. 달빛 한 줌까지 버리지 않고 애지중지 키운 씨앗을 멀리 떠나보낸 그 빈 가슴이 어머니 같아, 마음이 아리다. 그렇게 늦가을 빈 들녘에는 자식들 걱정에 모든 걸 다 내어준 어머니의 빈 가슴 같은 박주가리 씨방만 남아 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어머니의 한 생이 빈껍데기로 고즈넉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