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지 100일, 고려인 5세 최마르크(13)군의 일상은 평화롭기만 하다. 우리말로 간단한 인사조차 할 줄 몰랐으나 학교 수업을 어느 정도 따라갈 만큼 적응의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참화를 피해 400명 이상의 동포가 조상의 땅에 들어와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직도 폴란드나 루마니아 등 인접 국가에서 국내 입국을 바라는 이들이 300명이 넘는다. 인도적 지원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최군을 시작으로 가족의 품에 안긴 남아니따(10)양, 그리고 이어진 단체 입국 행렬까지 고려인마을의 모금운동으로 항공권을 마련, 가능했다. 또 법무부는 외교부와 협의를 통해 사증 신청서류 대폭 간소화, 여행증명서 발급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신분증만 가지고 피난길에 올랐던 김루샤(70)씨도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껏 한국에 모두 411명이 안착했으며 이 중 300여명은 고려인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전쟁이 장기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다 모국 입국을 희망하는 동포가 수백명에 이르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지속적인 온정에 힘입어 이달 말이면 광주에 도착한 인원이 5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면서 지역사회가 힘을 더 보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시민들과 기업, 각종 기관·단체 등에서 보낸 후원은 1천300건, 금액으론 4억4천만원에 달하는 규모다.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마을은 동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교육 현장으로 가꾸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역점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와 ‘역사마을 1번지’를 모토로 참여형 체험 및 연령대별 맞춤형 견학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기념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이 곳에는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애환을 지닌 고려인의 후손 7천여명이 모여 산다.

아무런 명분없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고려인동포들이 고통이 커지고 있다. 태어나 고 자란 고향 땅을 빼앗기고 난민의 삶을 강제당한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광주의 품에서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추가 입국과 정착을 위한 실질 도움이 절실하다.